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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3세’ 따냐 “저에게 풍물 의미는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8-12-11 00:00:00조회642회

고려인 3세’ 따냐 “저에게 풍물 의미는…”

어렸을 때는 우주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단한’ 풍물패를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그가 두드리는 장구와 꽹과리에는 신명이 살아있다. 그가 돌리는 상모에는 흥이 실려 있다. 오롯이 풍물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이 따냐(23·Li Tatiana). 한민족 핏줄을 타고났지만 러시아 국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고려인 3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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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놀이를 배우기 위해 지난 9월 한국에 온 따냐(위)와 안톤.
따냐가 한국에 온 것은 지난 9월. 네 번째 방문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풍물을 배웠지만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내년 8월까지 풍물연습만 할 계획이다. 하루 일과도 온통 풍물연습이다.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온종일 풍물과 함께 하고 있다.

“16살 때 풍물을 처음 배웠는데, 할머니·할아버지의 문화를 만지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는 러시아 쌍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의 풍물패 ‘한누리’ 일원이다.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는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로, 10명의 단원들이 비디오를 보며 자체적으로 풍물연습을 해왔다. 풍물을 더 배우고 싶어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 상쇠였던 따냐가 러시아 친구 안톤(23·Anton Kuzmin)과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였다. 한국말은 서툴고 앳된 얼굴이었지만, 그의 결심은 다부졌다.

“풍물은 다른 춤하고 완전히 달라요. 그냥 ‘몸 춤’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합쳐지는 거예요. 또 혼자서 즐거움을 갖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거움을 나누잖아요.”

현재 그의 한국생활은 예술마당 ‘살판’이 지원하고 있다. ‘살판’은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와 자매결연을 맺은 곳. 따냐의 의식주를 해결함은 물론 간단한 러시아어와 영어, 손짓발짓 등을 총동원해 풍물전수를 도맡고 있다.

‘살판’의 전동일 사무국장은 “웬만한 한국 사람들보다 풍물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며 “신체적으로나 감각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연습할 때의 정성과 집중력은 다른 사람들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왜 그렇게 열심히 풍물연습을 하는 걸까. 대답은 명쾌했다.

“풍물은 저한테 그냥 취미가 아니라 뿌리를 다시 얻는 거예요.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이거든요.”

파란 눈의 안톤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풍물”이라면서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던 부모님도 이제는 공연을 보러 오고 아는 사람들에게도 소개할 정도다. 한국은 이제 가까운 나라”라고 한수 거들었다.

모든 고려인들이 따냐와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요즘 젊은 고려인들은 자신을 러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김치 등 한국음식을 먹지만 대부분의 한국문화를 잃어버린 게 현실이란다.

따냐는 왜 여느 고려인들처럼 러시아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은 걸까.

“고려인들끼리도 한국 사람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어요. 얼굴은 한국 사람이지만, 마음은 이미 러시아 사람인 거죠. 그런데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이 곳에서 뭔가를 하려면 나를 알고 한국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자기 뿌리를 알아야 하잖아요.”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씨의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또 기뻤다. 러시아에서도 우주선을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그런데 한국 여성이 러시아 남성들과 함께 우주에 간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막연했던 자신의 꿈이 이뤄진 것만 같았다.

따냐는 풍물 외에도 탈춤, 판소리, 태평소 등 한국문화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배우고 싶어 한다. 러시아에 돌아가서 ‘대단한’ 풍물패를 만들겠다는 포부 때문인데, 그 꿈이 정말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그는 ‘위험한 질문’이라고 받아치며 자신있게 말했다.

“우리 풍물패 친구들은 풍물을 아주 사랑하고 앞으로도 풍물을 계속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에요. 지금도 공연을 하면 러시아 사람들이 박수도 치고 같이 춤도 추고 함께 하고 싶어 하죠. 더 많이 배운 뒤 러시아에 돌아가서 배운 걸 가르쳐줄 생각입니다. 기술 부분이 보강되면 최고가 될 거예요.”

풍물을 칠 때마다 ‘신명’을 느낀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저 멀리 러시아에도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고생하면서도 자기 할머니·할아버지의 문화를 더 많이 알고 싶어해요. 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 한국 청소년문화교육센터(www.hanycec.org)

연해주에 거주하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 당했던 러시아 고려인들이 모여 한글과 한민족 문화를 배우는 교육문화단체로 1995년 설립됐다. 고려인 청소년들과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러시아인들은 이곳의 한민족한글학교와 아리랑문화교실에서 한글과 풍물놀이, 전통춤, 한지공예 등을 배우고 있다.

그동안 센터는 고려인 2세 이 나탈리아씨의 사재를 털어 운영돼왔다. 이씨가 쌍트 페테르부르크 제151국립학교의 교감이었던 덕에 교실과 강당을 빌릴 수 있었다. 이씨는 러시아에서 최초로 한국어를 정식교과(제2외국어)로 인정받게 해 한국 정부로부터 한글발전유공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씨가 교직에서 퇴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