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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고려인동포모국방문단행사를 응원합니다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13-01-23 00:00:00조회651회

고려인모국방문 행사를 위하여 ~ 드디어 봉사단의 발대식이 이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가슴 뜨거운 청년들!! 첫 대면하는 자리라 화기애매 분위기  이 화기애매한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 자기소개 와 봉사단의 참여하게 된 동기를 시작으로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고려인을 돕고자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이니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이제 고려인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고려인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기 위해 방문하는 모든 곳을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 모든 정보를 러시아로 번역하고 ~말 할 수 있도록 조를 나눠 모의실습도 진행하였다.
 

 드디어  6박 8일 일정이 시작

고려인 1세대 어르신 70명과 그 후손 30명이 방문하는  큰 행사로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추운 날씨속에서도 6박8일의 일정을 무사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고려인 모국방문단의 손과 발이 되어 봉사하였던 프렌드아시아 모스뜨 2기 자원봉사자’ 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모스뜨’는 러시아로 ‘다리, 교각’라는 뜻으로 ‘고려인들 모국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자’라는 뜻을 담고 활동하고 있다.)


 고려인 1세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었던 '모스뜨 2기 봉사단'

 활동하기까지의 봉사단원의 생생한 봉사활동 후기를 들어보자!!
 

인심 가득한 고려인의 사랑으로 힐링되다

 "모스뜨 2기  장 혜민 봉사단원" 

 

 긴장과 설레임으로 시작되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봉사단원들과 모여서 긴장감을 가지고 인천공항에서 모국방문단을 기다리니 드디어~~~이름표를 목에 거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수줍은 미소를 띠시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셨다. 고려인1세 노인 분들이 많으셨는데 모국인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고 하셨다. 사전 교육 때 공항에서 무지 정신이 없을 거라고 들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덕분인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고, 인원체크를 하고 버스를 타고 그렇게 출발을 하며 우리의 활동은 시작되었다.

 

 걱정은 점점 사리고 어느새 찾아온 편안함
 

이 활동에서는 언어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전달사항에 있어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세가 거의 80세 이상인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귀가 잘 안 들리셨기 때문에 일일이 귀에다 대고 크게 말씀드려서 의사소통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6명의 고려인 어르신들과 한 팀이 되었다. 나는 어르신들에게 미리 써놓은 종이를 보며 수줍게 자기소개를 하였다 서툴게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많이 웃어주시고 귀여워해주셨다. 나는 그런 어르신들의 모습에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어린아이 같았던 어르신들의 모습
 

대천해수욕장에 갔을 때는 바다를 쉽게 보실 수 없기 때문에 신기해하시며 아이들처럼 모래에서 조개 껍데기와 소라껍데기 등을 주워 모으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고, 부여에 갔을 때는 눈이 많이 와 있었는데, 버스를 타기 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에게 눈을 뭉쳐 던지시며 아이처럼 웃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롯데월드를 갔을 때는 별로 즐거워하시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이들 보는 인형극을 집중해서 재미있게 보시고 놀이기구도 많이 타고 싶어 하셔서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던 것 같아 좋았다. 아쿠아리움에서도 아이들처럼 물고기들과 펭귄, 상어 등을 신기한 듯 감탄하시면서 구경하던 그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75년 긴 세월 타국에서 힘겹게 살아가셨을 어르신들이 이번 모국방문행사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길 가슴 깊이 빌어 본다.

 

 힐링은 바로 이런 것이다!!!!
 

2012년 들어서 몇몇 봉사활동들을 해 보았지만, 이번에는 시험기간이라 더 많은 걱정을 하며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오히려 학교에 있었으면 시험기간이라고 스트레스 가득한 나날들이었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 덕분에 더 많이 웃고, 인심이 가득한 그분들의 사랑을 가득 받고, 힐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 너무나도 감사하다. 러시아어를 전공하면서 이렇게 뜻 깊게 쓰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부족한 나의 실력으로도 조금의 도움이나마 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하다. 그리고 봉사활동들을 해 보면서 느끼는 점인데,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자꾸 도전하고 그곳에서 배우고 하면서 내가 오히려 성장하고 치유 받고 도움을 많이 받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을 계기로 또 이러한 기회가 있으면 기꺼이, 당연히 참여하겠다고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다

 "모스뜨 2기 서 정현 봉사단원 "

 

2012년 12월 나는 대학교 4학년 취업 준비생이다.
 

4학년 1학기가 ‘졸업반’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생활을 정리하는 학기였다면, 4학년 2학기는 본격적으로 ‘스펙’과의 전쟁을 치르는 잔인한 학기였다. ‘취업 준비생’이라는 현실 속에서 어른스럽게 하나하나 준비해나가는 척했지만, 사실은 무엇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회로 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마냥 대학생으로 남아있고 싶은 아쉬움을 감추고 지냈다. 항상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지만 보람을 느끼지도, 그것들을 준비하는 내내 즐겁지도 않았다. 정신적으로 참 공허했었다고 표현한다면 가장 적합할지도 모른다.

 

 또 한 번 참여하다.
 

그러던 중에 2011년 참여했던 제1회 ‘고려인 모국방문 행사’ 봉사를 2012년에도 다시 한번 참여하게 되었다. ‘스펙’ 강요 받는 현실 때문에 부담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처음, 공항에서 고려인분들을 만나 뵙고 나니 작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분들도 역시 피곤함도 잊은 채 설렌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 같으셨다. 장시간 비행에 피곤하실 법도 한데, 공항을 나와 이동하는 내내 창 밖을 보시며 설레어 하시는 모습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반가운 손님에 대한 환영인사라도 하듯 폭설과 강추위가 일정내내 계속되었지만 고려인분들은 연신 감탄과 고마움을 표현해주셨다. 어르신들은 그토록 자랑스럽던 고국의 발전을 두 눈으로 확인하시고는 장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시며 진심으로 축복해주셨고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던 내 주위의 모든 환경에 감사함을 느꼈다.

 

 75년 세월을 어찌다 이해할 수 있을까?
 

수원 삼성관에 방문했을 때, 평소 농담을 잘하시는 한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지금 몇 년도에 와있는 거냐’고 웃으시며, ‘우리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성실함, 노력만으로 이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처럼 너희들도 성실히 노력했기 때문에 이렇게 발전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렇게 발전하게 된 이 머리가 좋아서만은 아니니 착각하지 말아라’ 라고 가볍게 던진 한마디가 봉사를 마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서울 투어를 하던 일주일 중 가장 추웠던 날, 거동이 불편하셨던 할머님의 건강상태가 염려되어 차량안에서 쉬시기를 권유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기어코 버스에서 내리셔서 일정에 함께하시기를 고집하셨다. 계속되는 나의 만류에 할머니께서는 기분이 상하셨는지 내가 난생 처음 한국에 왔으며, 이것이 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쉴 수가 있겠냐며 하나라도 더 보고 가겠다고 화를 내셨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서울이 어르신들께서는 평생을 그리워하던 모국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짠했다.

 

나의 불평과 불만을 잠잠하게 하다.
 

이번 봉사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느꼈다. 머리가 좋아서 성공한게 아니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내가 그동안 처한 상황을 불평하고 버거워하느라 가장 중요한 노력을 멀리했던 것은 아닌지, 누군가 에게는 정말 가치있고 소중한 내 주변 환경들을 정작 나는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은 아닌지..이번 봉사활동이 공허하고 잉여롭던 생활에 자극제가 된 것 같다. 할머님 할아버님들을 대하는 것에 낯설어 마음과는 달리 한분 한분 조금 더 잘해드리지 못한 점이 정말 아쉽지만 그래도 보람있고 따뜻했던 일주일이었다.

 

 

 우리는 한 민족입니다.

 "모스뜨 2기 곽 창석 봉사단원 "

 

 

무엇인가 절실히 필요한 때 프렌드아시아를 만나다.
 

 

대학교 졸업후 계속되는 취업의 난 속에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던 2012년 추운겨울....우연히 ‘프렌드아시아’라는 비영리 단체를 알게 되었고 ‘고려인 모국방문단’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프로그램인지, 무엇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 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며 변화가 절실했던 때 였다. 주저 없이 신청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모국방문단’ 봉사자의 한 일원으로 선발 되었다.

 

형언 할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 가슴 깊이 남다.
 

 

그 첫 만남 이후부터 7일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해 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봉사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은 정이 들었다. 행사 당일 갑자기 찾아온 한파와 폭설이 내려서 이동하는 데 어려움으로 차량이동시간이 길어졌지만 차안에서 고려인 어르신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내면서 서로에 대해 얘기하고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지금 다시 그 분들과 보냈던 추억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아련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소리내어 울다
 

 

모국방문프로그램 마지막 날, 숙소에서 할아버지들의 안부를 물으러 갔다 그 때 어르신들은 나에게 강제이주 되어 타국에서의 힘겹게 살아가신 그 때 그시절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사연을 들으니 부끄럽게도 그 자리 할아버지들 앞에서 소리 내어 울게 되었다. 6박 8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다시 낯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셨다. 취업난 속에서 자신 감을 잃고 있던 나에게 다시 한 번 통해서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소중한 기회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프렌드아시아와 모스뜨 봉사단원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고려인모국방문행사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었던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무사히 마쳤다

 

 

'우리 죽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있갓어? 내 이제 돌아가면 우즈벡에서 죽을지 살아서

또 모국을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서도 그래도 다시 꼭 한번 만납소 ...우리를 잊지 마시오'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으로 자원봉사자... 고려인 어르신들 모두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

 

이번 행사를 통하여 고려인 어르신들에게 75년 세월을 기다린 세월의 애환이 위로되고

 자원봉사자 모두에게는 한민족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래본다..

 

이번 고려인 모국방문 행사는 KBS를 통해 2013년 새해 특집방송으로 전국에 방송될 예정이며, 이번 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가 고려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더 많이 갖는 기회가 되어 2013년에는 중앙아시아에 있는 고려인들이 함께 모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지기를 기대해 본다.

 

“카레이스키! 나의 살던 고향은 ”

방송날짜 : 2013년 1월 5일 / 12일 / 19일

방송시간 : KBS 2TV 오전 6시 ~ 6시 50분

 

프렌드아시아는 1996년 처음 우즈베키스탄의 어려운 가정을 지원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는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카자흐스탄등 5개 지역에서 아이들의 교육과 인재 육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 NGO이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40만 고련인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고려인 후손 모국 방문을 통한 국제청소년 교류활동을 6년째 시행하고 있다.

 

프렌드아시아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고려인들을 지원하여 그들의 소원이 하루속히 이뤄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바이다. 2013년도에 더 많은 기업과 개인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고려인 모국방문단 사업이 지속되길 희망하며.....

 

 


모국방문단 기사보러 가기

http://happylog.naver.com/centralasia/post/PostView.nhn?bbsSeq=37122&artclNo=123461790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