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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보를 다녀와서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4 00:00:00조회521회

오늘은 스파스크 주변에 있는 치칼로프스크와 노보르산노프카에 사랑의 공동 모금회에서 지원하는 농업정착 보조금을 전달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인상적인 고려인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있어서 펜을 들었습니다.

'노보르산노프카'라는 곳은 우리나라의 '里'쯤 되는 촌부락인데 아주 외딴 곳에 다 쓰러져가는 나무 집에서 혼자 사시는 81세의 할아버지셨습니다.


'리 덕선'이라는 할아버지이신데,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셔서 14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함흥으로 가셨다가 그곳에서 다시 사할린으로 이주하셨다가
스파스크로 오신 할아버지셨습니다.

전날의 직업은 양복 재봉사였는데, 20년 전에 할머니와 외동딸과 헤어진 후 혼자서 여생을 보내고 계시는 할아버지였지요.

4월과 5월의 보조금 1,000루블을 지급해 드리자, 눈물을 흘리시며 "나는 이 돈 못 받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
남한과 북한이 같은 민족끼리 전쟁이 나서 서로 죽이고 싸울 때 자신은 타향 객지에서 돕지도 못하고, 부끄럽게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이 도움을 어떻게 받을 수 있냐?"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한민족의 한 분신을 보는 듯했습니다.

"나도 내가 남의 나라에 와서 살고 있지. 그 동안 러시아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면 내 가슴이 터지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분명! 이 할아버지의 절규는 우리 모든 고려인들의 아픔이자 현실이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가는 곳마다 만나는 고려인마다 드라마틱한 인생 길을 걸어오신 분들 뿐이었습니다.

박안나라는 할머니는 7살 때 강제 이주 당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전에 듣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화물 열차가 갑자기 정차했다가 갑자기 출발할 때마다 침대 2층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추위 때문에 피위 놓은 화롯불에 몸을 데는 사람도 있었고, 부상을 입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고려인들이 썼던 약은 가지고 있던 된장을 붙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된장이 특효약이었다나요!

자식들과 이산가족이 되어 홀로 사시는 할머니, 누가 문만 두드리면 '혹시나!' 마음 설레이며, 오지 못할 자식인 줄 알면서도 기다리신다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시는 할머니를 대신 자식이 되어 끌어안아 드렸습니다.

조국 없는 설움 속에 떠도는 소수민족으로서 받은 설움과 한은 이분들의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돈을 나눠 드리는 분들마다 얼마나 고마워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는지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는 길에 6년 전 교통사고로 재수술을 요하는 환자집에 들렀는데, 6년 전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난 아주머니가 목발을 짚고 우리를 맞아 주셨어요.


또 재수술을 하려면 3,000$가 들어가는데 막막한 현실이었습니다. 오른쪽 대퇴부가 완전히 부숴져서 철심으로 붙여 놓았는데 세월이 흐르니 뒤틀어져서
재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지원금을 드리니 너무 고마워하시며, 그 불편한 몸으로 뭐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한사코 차 마시고 가라고 붙잡으시는 거예요. 마치 고국에 온 듯한 푸근한 정이었습니다.

연해주에는 너무 불쌍한 고려인들이 많음을 오늘 또 새삼 느꼈습니다. 정착촌 뿐만 아니라 도시와 시골에도 설움받으며 사는 우리 동포들이 가는
곳곳마다 많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솟구쳐오르는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넓고 넓은 연해주 하늘 아래

세계에서 제일 넓은 나라 러시아에

정말 바둑판의 바둑알처럼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들!

그들은 바로 이웃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이었습니다.



수난의 시대에 한반도를 떠나

남의 나라에서 설움받으며 고통받은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 그들을 외면했었습니다.

아니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조국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국이 그들을 외면했던 것 만큼이나 조국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저는 잃어버린 우리 민족 고려인을 만나

땅이 달라 겪어야 했던 그들의 수난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50만 고려인의 아픔이자 현실이었습니다.



시대는 고려인을 외면했을지 몰라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고려인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