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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사람들-"연해주 고려인을 도와주세요"

작성자조선일보작성일2006-07-03 00:00:00조회5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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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400원이면 하루를 버틸 수 있습니다. 동토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40만 우리동포를 도와주세요.”

‘고려인돕기운동회호남본부’(본부장 오채선) 자원봉사자 김재영(32)·박정인(30)씨 부부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1년여동안 봉사를 마치고 잠시 귀국했다. 김씨는 전남실업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고려인들의 사정을 듣고 부인과 함께 지난해 4월 연해주로 봉사활동을 떠났었다. 김씨 부부는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고려인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왔다”며 그들의 딱한 사정을 전했다.

‘까레이스키’. 연해주와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을 이르는 러시아 말이다. 그들의 이민은 조선말기에 시작됐다. 일제침략이 노골화하면서 독립운동을 위한 망명 등으로 이민자 수는 급증했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까지 한민족 특유의 근면과 성실로 연해주를 개척해 정착에 성공했다.

이주 후 황무지나 다름없던 중앙아시아에서도 맨손으로 땅을 개간해 틀을 잡았지만, 90년대 구 소련의 붕괴로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독립국가가 생기면서 자국민 우월정책으로 이민족들에 대한 차별이 심해졌다. 농산물과 가축들은 판매가 금지되고 애써 가꾼 농토도 빼앗겨, 다시 연해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과 기아와 질병 뿐이었다.

김씨 부부는 고려인돕기운동회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는 옛 군대막사와 비닐움막에서 연명해가는 임시정착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김씨는 한글을 잃어버린 한인 2·3세들을 위해 글을 가르치고, 수지침과 지압술로 아픈 사람을 보살폈다. 부인 박씨는 이발을 도왔다.

“그들의 삶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강도와 약탈, 심지어 살해 당해도 보호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영하40도의 혹한에서 난방시설 없이 생활하는 그들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김씨는 특히 “1940년 이전에 이민한 사람을 우리동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재외동포법이 빨리 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대부분 독립운동가의 후예들인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이국 땅에서 국적 없는 설움을 겪고 있는 우리동포를 꼭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김씨 부부는 오는 7일 오후6시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고려인돕기 후원의밤’ 행사에 참석한다. 김씨가 그들의 생활을 촬영한 50여점의 사진도 전시된다. 김씨 부부는 설을 보내고 다시 연해주로 떠난다. ☎(02)430-3278

( 김영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