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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이야기(2) - 이제 막을 내려야 할

작성자인터넷구굿신문작성일2006-07-07 00:00:00조회547회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고려인 이야기(2) - 이제 막을 내려야 할 수난의 역사
▲ 농촌의 고려인 아이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시아 대륙을 유랑하는 수난의 역사가 이제 막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고려인돕기운동본부

‘봉오동 전투’로 유명한 홍범도(洪範圖·1889∼1943)장군. 그의 아내와 아들은 1908년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1910년 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되자 그는 소수의 부하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 만주로 가 독립군을 양성했고 무장유격대를 이끌고 함경도와 만주, 연해주 일대에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소비에트연방이 세워진 후, 1937년 홍 장군도 다른 고려인들과 함께 강제이주 열차에 구겨 넣어져 중앙아시아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는 카자흐스탄의 시골 크질오르다 조선극장경비로 지내다가 1943년 10월 25일 머나먼 이방 땅에서 75세의 나이로 쓸쓸히 숨을 거뒀다.

한반도에 남은 사람들은 그래도 세월이 지나 해방을 맞이하고 국력이 회복되어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며 OECD에 가입되는 등 잘 살고 있는데, 항일(抗日)정신에 불타서, 혹은 가난에 찌들어서 두만강 건너 북으로 흘러간 혈족들은 아직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곳곳을 정처 없이 떠도는 유민(流民)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시작된 유랑민의 삶

오늘날 러시아와 CIS(독립국가연합)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은 약 55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의 고려인들은 독립국가들의 자국민 우월정책에 밀려, 60여년의 세월을 바쳐 일궈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위기에 쳐해 있다.

가장 상황이 심각한 곳은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다.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동족상잔을 겪은 나라로 1992년부터 97년까지 계속된 내전으로 인구 700만명 중 10만여명이 숨졌다.

매일 길거리에서 칼부림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수민족인 고려인은 가장 먼저 쫓기듯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고려인돕기운동회 박정연 사무국장은 “타지키스탄에서는 92년 내전으로 2만명에 이르던 고려인 중 1만5천명이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의 이주가 불가능한 노인과 같은 힘없는 사람들이었다”고 전했다.

▲ ©‘연해주고려인협회’ 1998

현재까지 가장 많은 고려인이 모여 있다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카리모프 대통령이 1991년부터 현재까지 16년간 독재정권을 공고히 하며 인권을 탄압하는 경직된 회교도 사회다. 게다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으로 테러가 빈발하고 마피아가 득세해 치안은 극히 불안한 상황이다.

회교도 자민족 중심주의의 확산은 때때로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 고려인 사회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고려인 학생을 구타하고 욕을 하면서 “너희 나라로 가라!”고 노골적으로 핍박을 하거나 주유소 등에서 고려인에게 리터당 요금을 더 요구하기도 한다. 난데 없이 우즈베크어 사용을 의무화해 그 동안 러시아어를 사용해 온 고려인들은 취업이 불가능해졌고,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좌천되고 있다.

이렇게 살 길을 찾아 유랑하는 고려인들, 그들 중 다수는 경제적으로 활기를 띤 도시를 찾아, 일부는 아버지의 고향 연해주를 찾아 러시아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구소련이 붕괴된 후 이미 다른 나라가 되어버린 러시아는 까다로운 국적법과 외국인 관련법으로 고려인의 이주가 쉽지 않다. 다행히 개정된 국적법(06.1.3 발효)이 고려인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혜택을 받는 대상자가 적법체류자에 한정되어 있어 여전히 많은 고려인이 임시거주자와 불법체류자 또는 무국적자로 남아있다.

▲ 공부보다 생계가 먼저인 아이들. 우리 돈으로 한 달에 단돈 5만원이 없어 하루에 16시간에서 18시간 일하고, 아이들까지 학업을 중단하고 밭으로 나가 일해야 한다.©고려인돕기운동본부
러시아 대사관은 러시아 전역에 분포돼 있는 고려인이 19만명에서 20만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4만명 이상을 임시거주자와 불법체류자 또는 무국적자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과 의료보험은 고사하고 강간, 폭행 심지어 살인을 당해도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처지다.

설혹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고 하더라고 이주비용과 거주지 확보에 따른 정착비와 생활비 등,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고려인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중앙아시아의 화폐단위가 하락하고 러시아로 이주하면서 급히 제 값을 못 받고 가산을 처분해 극빈자로 전락한 사람들도 상당하다.

고려인돕기운동본부 박정열 사무국장은 “러시아와 CIS(독립국가연합)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 55만여명 중 10만명이 최소한의 생활이 불가능한 극빈자”라며 “우리 돈으로 한 달에 단돈 5만원이 없어 하루에 16시간에서 18시간 일하고, 아이들까지 학업을 중단하고 밭으로 나가 일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누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 있어서 배타적 민족주의의 대두와 정치ㆍ경제적 불안정으로 다른 소수 민족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찾아 돌아가고 있다. 이들은 입국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이고 모국으로부터 귀국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정착비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재외동포에서 제외돼 조국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2004년 4월 새롭게 개정된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들에게 출입국과 체류는 물론 부동산, 금융 등 경제 분야에서 의료보험과 연금 같은 복지 분야에 이르기까지 내국인과 거의 동등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고려인이 제외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제외동포법은 재외동포를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에 포함시켰다.

▲ 이산가족의 아픔. 남편의 생사를 몰랐던 한 부인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후 30년이 지나서야 남편의 사망통지서를 받고는 오열을 터뜨렸다.©고려인돕기운동본부
그러나 문제는 이 규정을 따를 경우, 국내 호적제가 시행된 1922년 이전에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이주한 동포의 후손들은 혜택을 받을 길이 없고 1922년 이후 이주했더라도 일제 치하의 호적부에 이름을 올리기를 거부했던 항일투사의 자손들은 배제된다.

현 재외동포법에 의하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1858∼1932), 여천 홍범도(汝千 洪範圖·1889∼1943), 부재 이상설(溥齋 李相卨·1870∼1917), 노은 김규식(蘆隱 金圭植·1880∼1931)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재외동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재외동포 정책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구 소련시절부터 유태인의 출국과 정착을 지원하여 100만 명에 가까운 러시아 유태인을 포용하고 있다. 독일은 통일 후 경제적 진통의 와중에 40만 명에서 50만 명에 이르는 러시아 거주 독일인을 받아들였다.

그리스 역시 그리스-로마시대에 흑해 연안에 이주한 그리스 후손을 받아들였다. 폴란드나 터키 등 그 외 대부분 나라들도 자국민들이 귀국할 경우 국적을 부여하고 정착지원금까지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주 우즈베키스탄 문하영 대사는 “당신네 나라는 해외에서 유랑하는 동포들을 본국으로 귀환시켜주는 정책이나 제도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독일대사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이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다는 문 대사는 후에 대한민국의 재외동포정책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현재 연해주에서 고려인을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 김재영 씨는 그의 저서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에서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들이 누구인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 땅으로 찾아 든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 아닌가. 오늘 우리가 내 나라에서 두 발을 뻗고 잠들 수 있고 내 땅이라고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해준 그분들의 후손이 아닌가 말이다. 국가와 국민들이 이 분들을 외면한다면, 그 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그 누가 조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는가 …”라고.
이영주 기자 joseph@googood.com
2006년 08월08일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