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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고려인…농업이 희망

작성자YTN 특별 기획 작성일2007-09-11 00:00:00조회496회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 YTN 특별 기획 두 번째 시간입니다.

고려인들은 옛 소련 시절 '농업 천재'로 불리며 삶의 안정을 찾기도 했지만, 소련이 붕괴하면서 또다시 독립 국가의 민족 차별과 가난에 맞서야 했습니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국경을 넘은 고려인들도 많은데요, 농군의 후예답게 농사를 지으며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 가고 있습니다.

 

옛 소련 시절 '노력 영웅'을 25명이나 배출한 우즈베키스탄의 김병화 농장.

여의도 면적의 90배가 넘는 땅에 목화와 밀 등을 빽빽하게 수확해내면서 고려인들의 자랑이 됐고, 번영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소련 붕괴와 함께 찾아온 민족 차별과 가난의 압박.

1,900여 세대가 북적거리던 마을엔 지금 고려인이 500명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들은 러시아 모스크바로, 카자흐스탄으로 돈을 벌러 떠나갔습니다.

이제는 기력이 쇠한 노인들만 쓸쓸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자] 

고려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에는 이미 다른 민족들이 많이 이주해왔습니다.

그나마 남은 집에도 이렇게 집을 판다는 문구가 여기저기 쓰여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땀흘려 농사를 지어봐야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5~6만 원.

변변한 이불도, 가재도구도 없이 살아가는 나타샤 씨의 가족들도 먹고살 수 있는 곳을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인터뷰:이 나타샤, 강제이주 고려인 2세] 

"가정형편을 꾸려갈 돈을 벌 수 없고 일도 어렵고 농사를 해도 수입도 많지 않아서 돈 벌러 다 떠나가려고 합니다."

일부 고려인들은 부모의 고향땅과 가까운 극동 연해주로 가보기도 하지만, 국적이 다른 러시아에서 정상적인 일거리를 찾기까지는 고통이 큽니다.

[인터뷰:김 마리나, 러시아 연해주 비자 상담소] 

"국적 취득은 몹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취업할 수도 없고, 여권이 없으면 취업 못합니다. 외국인 취업 비자 받아야 하는 데 이게 어렵습니다."

러시아에서도 비옥하기로 소문난 로스토프나도누.

조국과 가족의 보호도 없이 국경을 넘은 고려인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몰려들고 있습니다.

러시아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다행히 이 지역 농업도 살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차 블라디미르, 집단 농장 일꾼]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계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 조금씩 도와드렸고,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을 다니다 관두고 어머니, 아버지를 도와서 계속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 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안젤라 씨.

석 달 전에는 아들도 낳았고, 무엇보다도 남편과 함께 일 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인터뷰:오 안젤라, 집단농장 일꾼] 

"농장에서 월급을 받는 것은 자기들이 얼만큼 열심히 일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지 날씨 조건에 따라 수확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로스토프와 인근 볼고그라드 등 북카프카스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고려인들은 10만 명 정도.

로스토프에서 100만 평 규모의 농장을 경영하는 김 미하일 일리치 씨도 농업이야말로 고려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작업이라고 강조합니다.

[인터뷰:김 미하일 일리치, 집단농장 대표] 

"고려인들은 농업에 관해서는 경험이나 우수성 때문에 고려인들이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기자] 

척박했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땅에서 처음으로 쌀농사와 양파 재배를 시작한 고려인.

우리나라 격변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작한 뜻하지 않은 유랑의 길.

힘든 순간 그들을 품어주는 것은 힘없는 조국도, 낯선 고국도 아닌 땀의 대가를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농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