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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들 ‘우즈베크 의료봉사’ 가다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7-04-25 00:00:00조회600회
“고려인 마을 진료 환자 많을수록 힘솟아” | |
독립유공자 후손들 ‘우즈베크 의료봉사’ 가다 |
의사·약사등 모임 ‘소금회’ 강제이주 동포 위해 방문
열흘동안 1천명이나 돌봐 “몸 힘들지만 매년 찾아올것”
“망막이 분리되는 상황입니다. 눈 앞에 파리 같은 게 막 날아다니죠? 혈압약은 드시나요?”
이득주 ‘헬스 앤드 라이프 클리닉’ 원장의 말에 농삿일로 검게 탄 리까피탈리나(50)의 얼굴빛이 하얘졌다. “바쁠 때는 못 먹고…”
“그러면 더 떨어져 나갑니다. 보자. 어떤 약이 맞을까…” 이 원장은 약 목록을 들추더니 곧 차트에 처방을 적었다. “넉넉히 드릴 테니까, 꼭 잊지 말고 챙겨 드셔야 합니다.”
지난 7일 오후 1시께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인근의 김병화 농장. 이 원장은 벌써 30여명째 환자를 맞고 있다. 점심도 거른 채다. 농장 안 김병화 진료소 건물에 차린 임시 진료실로 쉴 새 없이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어서다. 옆방의 김희진 연세대 치대 교수도 의자에 잠깐 앉을 틈이 없었다. 치과의사가 입안을 살피려면 서서 허리를 수그려야 한다. 이들이 쓴 처방전은 또 다른 옆방의 간이 약국으로 전달된다. 강래영·주지예 두 약사와 자원봉사자 엄미숙씨도 약 고르랴, 복용법 설명하랴 입이 바짝 말랐다.
환자들은 거의 이 농장에 사는 ‘카레이(고려인)’들이다. 리까피탈리나가 가장 젊은 축에 든다. 우리 농촌처럼 대부분 60~70대다. 고려인들은 1937년 옛 소련 스탈린 정권 시기 연해주에서 강제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겨졌다. 윤태영 타슈켄트 동방대학교 교수는 “스탈린 정권은 연해주 고려인들이 혹시 일본 편을 들까봐 이곳으로 이주시켰다”고 말했다. 일제가 ‘내선일체’를 부르짖던 상황이 가장 강고한 항일 집단에 잠재적 ‘친일’ 세력의 탈을 잘못 덧씌운 아이러니였다. 정착 초기 고려인들은 맨손으로 토굴을 파 생활하며 황량한 갈대밭을 옥토로 바꿨다. 김병화 농장도 농토 개간을 이끈 고려인 사회주의 노력영웅의 이름을 따왔다.
진료진은 모두 한국에서 온 ‘소금회’ 회원들. 국가유공자 자녀 간호사·약사·의사·자원봉사자 모임이다. 86년 창립 이래 국내 무의촌 진료 봉사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성백균 소금회 회장은 “창립 20년을 맞아 새로 해외 봉사를 계획하다가, 조국을 떠난 뒤 다시 근거지마저 옮겨야 했던 고려인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때마침 올해는 강제이주 70년을 맞는다. 성 회장은 “많은 고려인들은 일제에 맞섰다는 점에서 소금회의 봉사 성격에도 걸맞다”고 덧붙였다. 성 회장은 3·1운동으로 2년 옥고를 치른 고 성해식 선생의 장손이다.
소금회 진료는 이날 또 다른 고려인 마을 ‘시온고’에서도 이뤄졌다. 박샛별 아주대 주임교수(가정의학과), 김영철 연세대 의대 영상의학 전공의, 최호천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 전공의, 김형국 ‘김형국치과의원’ 원장이 진료를, 김윤희·김연경 약사와 자원봉사자 민은자 드림아이교육센터 대표가 약국을 맡았다. 소금회는 7~11일의 봉사 기간, 고려인 마을 5곳과 우즈베크 마을 1곳을 찾아 모두 1000여명에게 진료를 펼쳤다.
매일 아침 8시30분 호텔을 나서 저녁 7시라야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는 강행군 탓에, 진료가 끝날 때면 박지수·최인수 두 20대 간호사의 눈가에 거뭇하게 원 모양이 피어났다. 그런데도, 성 회장은 싱글벙글했다. “우리가 좀 힘들어도 ‘손님’은 많을수록 신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앞으론 매년 찾아올 계획”이라고 했다.
매일 아침 8시30분 호텔을 나서 저녁 7시라야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는 강행군 탓에, 진료가 끝날 때면 박지수·최인수 두 20대 간호사의 눈가에 거뭇하게 원 모양이 피어났다. 그런데도, 성 회장은 싱글벙글했다. “우리가 좀 힘들어도 ‘손님’은 많을수록 신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앞으론 매년 찾아올 계획”이라고 했다
봉사 정례화엔 현지 의료인들도 큰 기대를 나타냈다. 아슈르미따브 누르스탐 이사이에비치 김병화진료소 원장(50)은 “의료 설비 지원 등으로 확대되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10일 양기율시 병원에 진료소를 차렸을 땐, 현지 의료진들이 대거 가운을 입은 채 소금회의 진료를 받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9일엔 타슈켄트 마피아 중간 보스의 손녀가 한국 의료진의 진료를 받겠다며 경호원과 함께 와 살짝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김영철 전공의는 “시티 검사 자료 등을 가져와 판독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견제민 주우즈베키스탄 대사는 “훌륭한 민간외교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고, 이번 진료를 후원한 국가보훈처 쪽도 “뜻이 좋은 만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