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들과의 교류협력 및 지원협력사업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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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1세대에게 한끼 사랑 나누기(2)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9 00:00:00조회558회
이곳에 홀로 남은 일 세대 노인 분들은 나라에서 주는 지극히 작은 연금으로 간신히 살아가며 자식들에게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나 누구도 돌봐 줄 사람이 없다.
몸은 나이 들어 병들어 죽어가지만 어디다 도움을 청할 수도 손을 벌릴 수도 없다.
병이 들어도 약살 돈도 없다.
멀리 떠난 자식들이 왜 이리 소식도 없는지..........
아직도 많은 고려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고 특히 일 세대 노인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시다.
이 분들을 방문하고 만날 때마다 뜨거운 동족의 피가 끓어 넘치지만 우리 힘과 능으로는 한계가 있다.
고려인들은 집을 떠나서 농사철까지 이 흙으로 만든 움막에서 먹고 자고 지낸다. 또 농한기까지 오갈데 없는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살기도 한다. |
어떻게 이들을 도울 것인가? 어떻게 위로와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얼마 전 고려인 이주 1세대 김 빠샤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날씨는 추운 겨울이었다. 우리들이 장송곡도 준비하고 악기도 준비해서 장례를 치루어 주는데 유가족들이 눈물겹게 고마워하신다. 이 마을에서 이런 장례식은 처음이라고....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상여도 운구차도 없다. 왠 큰 트럭이 부릉 부릉 시동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 차로 고인을 모신단다. 세상에 마지막 가는 길까지 이런 설움 속에 가야 하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나는 한국에 장례식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가난해도 얼마나 정성껏 최선을 다하나.
장지가 멀지 않아 트럭 위에 유가족이 타고 나머지는 도보로 간다. 장지로 가는 길이 질고 평탄치 않아 트럭이 빠져 꼼짝 못한다. 트렉타를 불러 끌고 가는데 트럭은 가기 싫은지 몸부림치며 비틀거린다. 어이해 마지막 가는 길까지 이렇게 험하단 말인가?
오! 하늘이여 이들을 도우소서!
작년 여름에 가장 어려운 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을 찾아 갔다.
배 나쟈 할머니... 집도 없고 자식도 없고 오늘은 이집 내일은 저 집에서 잠을 자며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다. 잘 곳이 없으면 거리에서 주무신다. 민족이 다르니 나라에서도 봐 주지 않는다.
또 어떤 할머니를 찾아갔다. 나이는 90세, 남편이 돌아가시고 큰 아들도 죽고 중풍 걸려서 꼼짝못하는 73세 된 며느리를 뒷바라지 하며 5,6세 된 증손녀까지 돌보고 계셨다. 손주와 손주며느리는 멀리 다른 나라 농사지으러 갔으나 2년째 흉작이라 오지도 못하고 소식도 없어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준비해간 적은 봉투를 내미니 "선상님 이러시면 안되우다. 이러시면 아니되우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소." 빵도 먹지 못해 굶는 사람들 갖다가 주라고 극구 만류하신다. 정말 안타깝고 목이 메일 뿐이다.
전기도 가스도 먹을 것도 없는 곳에서 이불 한채 와 냄비가 전부다. 남편은 상사나고,,, 자식을 고분지 하러 떠나서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양식과 성금을 보시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고려인들이 많다고 하시는 연안나 할머니(72세)시다. 이 형편에 더 어려운 고려인이 또 있단 말인가... 나보다 더 어려운 우리 고려인들 많으오!! 살을 에이는 듯한 이 동삼에 어떻게 살으셨나 싶었다. |
유 왈랴 할머니...67세시다. 병이 들어 문 밖 출입이 어려우시다. 이혼한 딸과 7살 난 손자와 살고 계신데 딸은 어머님 때문에 일도 다닐 수 없고 정말 작은 연금으로 세 식구가 같이 살고 계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준비해간 작은 봉투를 내밀었더니 이분도 역시 받기를 거절하시며 더 어려운 사람을 소개해 주신다. 진정으로 눈물어린 거절이었다. 아름답고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 자신의 어려움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
죽기 전에 쌀밥이나 한 그릇 드시고 싶다는 어느 할머님을 찾아갔다. 딸이 돈 벌러 갔는데 죽었는지 소식이 없다시며 눈물지으신다. 고려인들은 식생활 또한 한국식이다. 김치와 밥이 주식이나 쌀값이 워낙 비싸니 거의 싸래기를 사서 가끔 손님이나 오고 특별할 때 조금씩 드시는 분이 대부분이시다. 거의 검은 빵 한 조각에 차이라 불리는 끓인 물 한 주전자가 이 분들 식사의 전부이시다. 다행히 마당 안에 과일 나무라도 있는 분들은 과일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연로하시고 홀로 사시는 분들은 거의 식사 준비도 어려우신 분들이 많다. 우리는 이 분들에게 어떻게 힘과 용기를 주고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
다른 고려인들은 나중에 생각해 본다 해도 어린 시절 강제 이주 큰 고생 속에서 부모와 함께 고생하고 굶주림과 열병으로 죽음의 폭풍을 견디고 살아남아 고려인의 맥을 이어온 일 세대 노인들, 노년에 이르러 또다시 겪어야 하는 민족의 설움 속에 살아야 하는 이 분들을 위해서 먹고 사는 걱정만이라도 없이 살다가 여생을 마치게 해 드릴 수는 없을까? 이 분들의 부모나 조부모님들은 거의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러시아로 건너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시던 분들이다. 이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분들에게 나를 사랑하고 나를 찾는 든든한 조국과 따뜻한 동포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루 한 끼라도 그렇게 소원인 쌀밥을 해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 분들에게 노인정을 준비해 테레비와 비디오를 준비해 드리고 그토록 가보고 싶었고 꿈에나 그리던 자랑스런 조국의 모습과 세계 속에 당당히 어깨를 나누는 한민족의 자랑스러움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포들의 삶을 보여드리고 서로 모여서 대화도 하시고 한끼 식사라도 같이 하시며 어려운 현실을 이기게 해 드리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진정 이분들의 소원은 굶어도 내 조국 내 땅에서 살다가 여생을 마친다면 한이 없겠다고 하시는 한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평생 가 보지도 못하고 갈 수도 없는 내 조국 내 땅 내 민족의 따뜻함을 나누어 드릴 수는 없을까?
<2002년 6월 중앙아시아 우즈베케스탄 고려인돕기 자원봉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