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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탈북자의 이야기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6 00:00:00조회594회
연해주 탈북자의 이야기
이곳 러시아 연해주 플라토노프카에 고려인 정착촌이 있다.
봄(4월)에서 가을(10월)까지는 농사를 지으며 농산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겨울이오면 그해 농사가 잘 되었다 하더라도 팔로가 변변치 않아 우수리스크라는 도시에 나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그들의 한달 생활비 50$~70$정도면 나름대로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올해 겨울도 그들은 우수리스크에 나가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일자리 또한 변변치 못하다.
플라토노프카에 사는 마리나 가정도 겨울을 나기위해 우수리스크로 향했다.
그의 가족은 이제 갓 돌이 지난 아들과 탈북자인 남편이다.
나는 오늘 탈북자의 슬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작년 8월 뜻이 있는 친구들과 러시아로 향하게 되었다.
고려인 농장과 정착촌을 방문하여 보람을 느끼며 봉사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다.
허술한 집에 몇 가정이 모여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집이 있다는 것과 가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 같았다.
마냥 뛰노는 3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으며 떠듬떠듬 말을 건네오는 모습이 여간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행복해 보이는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탈북자 00씨였다.
“죽을 고비를 3번이나 넘겼소.”라고 말을 하며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스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로 넘어온 그의 형제
그러나 그들은 경찰들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잡히고 말았다.
북한 수용소에 갇힌 그들은 형제가 서로 떨어져서 지내야 했다.
돼지우리와 같은 캄캄한 감옥에서 북한으로 옮겨질 날에야 그들은 밝은 하늘을 볼수 있다.
그리고 무언가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그들은 북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고 달리고 있었다.
형제의 발에는 나란히 족쇄가 채워졌고 묵묵히 밖을 내다보며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 그들의 발에 채워진 족쇄가 조여져 있지 않음을 알고 그들의 눈은 다시금 번쩍었다.
동생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고 경찰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달리는 기차의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한참 후 눈을 떠 보니 자기는 살아있었으나 동생은 두만강에 빠졌는지 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온몸은 피투성이와 멍투성이였다.
동생을 불러보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고. 동생의 흔적도 찾지 못한 체 홀로 길을 떠나야 했다.
걷고 또 걷고 걸어서 그가 도착한 곳이 플라토노프카 고려인 정착촌이다.
고려인들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또 함께 농사도 지으면서 살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해주었다.
마리아라는 착한 고려인 여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이젠 한아이의 아빠가 되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행복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기를 마음으로부터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로 막을 내릴 수 없었나 보다.
작년 8월의 봉사가 계기가 되어 고려인 돕기에 지원을 하여 12월 25일 정식 봉사자로 러시아 땅을 다시금 밟게 되었다.
3월24일 우수리스크에 나가있는 마리나에게 연락이 왔다.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남편과 함께 우수리스크에 나간 것이 큰 잘못이였다.
경찰에게 걸려 북한수용소에 갇힌 지 한 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모색해 보았지만 남편을 빼내는 데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곳으로 전화를 해 도움을 구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므로 우리로 하여금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4월 4일 마리나에게 다시금 전화가 왔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북한으로 잡혀갔어요.” “언제요.” “오늘 북한에서 차가와서 데리고 갔어요.”
마리나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2주일 전... 남편인 탈북자 00가 경찰에 붙잡혀 탈북자 수용소에 갇힌 지 한 달이 되었다며 도움을 구했던 마리나...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남편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의 노력은 그저 눈물만 흘리며 잡혀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 뿐 이였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차라리 영화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해피엔딩으로 바꿀수 있으련만...
이제 과연 그(탈북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남아있는 마리나가 그저 애처롭고 안쓰러울 뿐이다.
비록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사랑할 수 있는 남편이 있었고 의지할 수 있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남편이 있어 행복했던 그의 단란한 가정도 모두 깨어지고 만 것이다.
이곳 러시아 연해주 플라토노프카에 고려인 정착촌이 있다.
봄(4월)에서 가을(10월)까지는 농사를 지으며 농산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겨울이오면 그해 농사가 잘 되었다 하더라도 팔로가 변변치 않아 우수리스크라는 도시에 나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그들의 한달 생활비 50$~70$정도면 나름대로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올해 겨울도 그들은 우수리스크에 나가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일자리 또한 변변치 못하다.
플라토노프카에 사는 마리나 가정도 겨울을 나기위해 우수리스크로 향했다.
그의 가족은 이제 갓 돌이 지난 아들과 탈북자인 남편이다.
나는 오늘 탈북자의 슬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작년 8월 뜻이 있는 친구들과 러시아로 향하게 되었다.
고려인 농장과 정착촌을 방문하여 보람을 느끼며 봉사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다.
허술한 집에 몇 가정이 모여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집이 있다는 것과 가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 같았다.
마냥 뛰노는 3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으며 떠듬떠듬 말을 건네오는 모습이 여간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행복해 보이는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탈북자 00씨였다.
“죽을 고비를 3번이나 넘겼소.”라고 말을 하며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스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로 넘어온 그의 형제
그러나 그들은 경찰들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잡히고 말았다.
북한 수용소에 갇힌 그들은 형제가 서로 떨어져서 지내야 했다.
돼지우리와 같은 캄캄한 감옥에서 북한으로 옮겨질 날에야 그들은 밝은 하늘을 볼수 있다.
그리고 무언가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그들은 북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고 달리고 있었다.
형제의 발에는 나란히 족쇄가 채워졌고 묵묵히 밖을 내다보며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 그들의 발에 채워진 족쇄가 조여져 있지 않음을 알고 그들의 눈은 다시금 번쩍었다.
동생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고 경찰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달리는 기차의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한참 후 눈을 떠 보니 자기는 살아있었으나 동생은 두만강에 빠졌는지 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온몸은 피투성이와 멍투성이였다.
동생을 불러보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고. 동생의 흔적도 찾지 못한 체 홀로 길을 떠나야 했다.
걷고 또 걷고 걸어서 그가 도착한 곳이 플라토노프카 고려인 정착촌이다.
고려인들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또 함께 농사도 지으면서 살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해주었다.
마리아라는 착한 고려인 여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이젠 한아이의 아빠가 되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행복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기를 마음으로부터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로 막을 내릴 수 없었나 보다.
작년 8월의 봉사가 계기가 되어 고려인 돕기에 지원을 하여 12월 25일 정식 봉사자로 러시아 땅을 다시금 밟게 되었다.
3월24일 우수리스크에 나가있는 마리나에게 연락이 왔다.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남편과 함께 우수리스크에 나간 것이 큰 잘못이였다.
경찰에게 걸려 북한수용소에 갇힌 지 한 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모색해 보았지만 남편을 빼내는 데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곳으로 전화를 해 도움을 구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므로 우리로 하여금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4월 4일 마리나에게 다시금 전화가 왔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북한으로 잡혀갔어요.” “언제요.” “오늘 북한에서 차가와서 데리고 갔어요.”
마리나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2주일 전... 남편인 탈북자 00가 경찰에 붙잡혀 탈북자 수용소에 갇힌 지 한 달이 되었다며 도움을 구했던 마리나...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남편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의 노력은 그저 눈물만 흘리며 잡혀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 뿐 이였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차라리 영화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해피엔딩으로 바꿀수 있으련만...
이제 과연 그(탈북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남아있는 마리나가 그저 애처롭고 안쓰러울 뿐이다.
비록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사랑할 수 있는 남편이 있었고 의지할 수 있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남편이 있어 행복했던 그의 단란한 가정도 모두 깨어지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