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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기자의 카레이스키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4 00:00:00조회608회

안녕하세요?
고려인 돕기 신참 자원봉사자입니다.
러시아에 들어온 지는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데 그 동안 아무리 koreiski.com을 열려고 노력해도 열리지 않아서 (연해주 인터넷 사정이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적어 놓았던 월드컵 관련 소식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곳에 올리시는 정규 자원봉사자 보다는 조금은 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인사드린 만큼 자주자주 연해주의 소식을 올리겠습니다.
지난 주에 저의 등록 문제로 블라디보스톡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제가 들어올 때마다 등록 때문에 항상 한 두달은 돌아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너무 쉽사리 등록이 되어 웬일인가 하고 별로 믿지 못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 경찰서로 직접 나오라는 전갈이 있더군요. 결국 그날도 아무 해결도 매듭도 짓지 못한 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등록 문제로 기분이 언짢아서 집으로 들어오려는데 마침 일행 중에 한 분이 폰드 회장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러시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마침 그 소식을 전해 들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근처에 있는 프타레이치카 시장에 들려 과일을 샀습니다. 가까운 곳에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과일을 팔고 있었지만 고려인의 물건을 사 주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져 시장을 오래 헤매어 저 구석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고려인 아줌마 한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좋지 않은 자리에서 과일을 팔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금새 눈물이 맺히시면서 "얼마 전까지 이 시장에 중간에 좋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말을 꺼내시더니 그 자리를 잡기까지 3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남보다 더 부지런히 자리를 굳혀 나가셨다고 합니다. 이제 조금 자리도 잡히고 단골도 생기고 돈도 벌리기 시작하자 이것을 본 러시아인들이 과일 좌판을 부시고 엎으면서 이 아주머니를 몰아내 버렸다고 합니다. 몇 번이고 그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피아의 도움을 받는 그들에게 함부로 했다가는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이 자리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사가 잘 되시느냐?"고 묻자 "보이기라도 해야 사람들이 사길 하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알 수도 없노라고 말씀하시며 여러 가지 과일들을 푸짐히 싸 주시는 손길에서 한 동포의 아픔을, 또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일을 들고 폰드회장의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병원은 경찰병원으로 주변이 깨끗하고 환경이 좋아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심장병으로 누워있는 폰드회장님(와짐)은 많이 초췌해지고 쇠약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 동안에 고려인들의 뒤에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은 도움을 주시며 무법천지의 나라라고 일컫는 모든 러시아의 기관들과 맞서며 고려인들의 힘이 되던 그 당당하고 패기있는 모습들은 심장병이라는 커다란 적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나 앞으로 쏘록(40일)만 있으면 나갈거요. 그 때 나갈 수 있다고 의사가 그랬소."
병이 그 때 되면 나을 수 있는 거냐고 옆에 계신 보호자에게 묻자 그렇지는 않을거라고 그냥 본인이 병원 생활을 힘들어하면서 그때 나가고 싶어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소수민족에 대한 많은 차별 속에서도 검찰청에 높은 직책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며 행복한 노년을 꿈꾸던 그...
하지만 구소련이 무너지고 공화국들이 자치공화국으로 바뀌면서 그는 다시 연해주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크고 멋있게 지어진 집도 그냥 버리듯 하고 루블만 한웅큼 손에 쥔 채 부모님의 고향 연해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이 곳에 와서도 그는 중앙아시아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집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고려인 - 거처조차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이고 있는 고려인-들을 위해 자청하여 나섰습니다. 폰드 회장이라면 혹자들은 편한 삶을 누리고 있는 높은 직책에 있는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가 맡은 그 자리는 고려인들이 당해야 될 온갖 수모와 욕을 앞에 나서서 감당해야 하는 희생의 자리였습니다. 같은 라즈돌노예에서 이웃해 지내며 그를 익히 보아온 저로서는 병원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이 조금 낯설었습니다.
늘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는 그의 표정이 늘 그를 강한 사람으로 비추었기 때문에 우리의 방문을 고마워하며 눈시울을 적시는 그의 모습 속에서 왠지 모를 뭉클함이 밀려왔습니다.
마침 가지고 있던 사진기로 그의 모습을 담아 이곳에 올리고 싶었지만 병색이 완연해 누워 있는 그의 얼굴 앞에서 활짝 웃으시라며 사진기를 내밀 수 없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그의 모습을 이곳에 올리지는 못하지만 그 날의 병문안은 참으로 안타깝고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빠른 완쾌와 고려인들의 밝은 미래가 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만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이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도 그의 병이 속히 쾌유되기를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