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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 뿌리는 서러운 유랑의 눈물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8-10-13 00:00:00조회562회

[나눔의자리]남의 땅에 뿌리는 서러운 유랑의 눈물

 

 

박정미_(사)고려인돕기 운동본부 러시아 자원봉사자로 활동. 파르치쟌스크 문화센터 한글학교 선생님(고려인돕기 운동본부 www.koreis.com)

크레모보 정착촌의 고려인들은 모두 농사를 짓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든지, 이곳에 오면 농사 외에 할 일이 없다. 농사는 이들의 천직이다. 이들의 부모들은 강제이주 전에도 ‘농사의 천재’로 불렸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이곳에 온 재이주 고려인들도 다시 러시아의 버려진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한가정이 보통 3~5ha까지 농사를 짓는데, 1ha가 3천 평이니 많게는 1만5천 평의 농사를 짓는 셈이다.
그나마 가깝고 기름진 땅은 러시아사람 몫이고, 고려인들은 정착촌에서 차로 30여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다. 5월부터 밭을 갈기 시작해서 6월부터는 아예 밭에다가 농막을 짓고 가을 수확기까지 밭에서 생활을 한다. 이 시기에 정착촌은 노인과 애들만 남고 텅 비게 된다.
농막 생확은 참으로 비참하다. 전기도 물도 없는 들판에 나무로 비만 새지 않게 지어놓은 농막은 허름하기 그지없다. 자재를 살 돈이 없어서 지분에 조각 비닐을 씌우놓은 곳도 있고, 허드레 장판을 가져다가 씌운 곳도 있다. 수십개의 농막이 무리를 지어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가관이다. 움막은 또 다른 정착촌인 것이다.
더구나 여름이 되면 주민들의 팔과 다리는 ‘까마르’라는 모기의 ‘밥’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곳에는 살을 파고 들어가는 아주 작은 ‘끌레쉬’라는 벌레가 있는데 이 벌레에게 물리면 치명적이다. 실제로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고려인 리 바실리 아저씨는 이 벌레에게 눈을 물렸는데 한쪽 눈이 멀어 거의 보지 못한다. 그는 목도 가누지 못하는데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늘 한손으로 목을 받치고 일을 한다. 그런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우리는 정말로 끌레쉬에 물려 그의 목이 그렇게 된 줄 알았다. 누가 물으면 바실리 아저씨는 항상 벌레에 물렸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구타를 당해 그렇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조용히 주변을 사리면서 러시아 사람에게 맞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실토했다. 그때 그는 서러운 눈물을 한없이 쏟아냈다.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말 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그랬다 고려인은 그 땅에서 그렇게 숨소리마저도 죽이며 살고 있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되면 한참 학업에 열중해야 할 나이의 학생들도 학업을 중단하고 밭에 와서 일을 해야 한다. 농사는 이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렇다할 기계장비 하나 없이 맨손과 괭이 하나로 그 넓은 땅을 일군다. 비닐 살 돈이 없어 멀칭을 못한 고랑은 비만 오면 잡초가 수북이 솟아오른다. 그러면 그들은 맨손으로 김을 매야 한다. 한국에서는 농약중독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그 농약 한번 치지 못한다. 농약을 살 돈이 없어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고려인들의 농사법과 기술은 러시아 전역에 이미 정평이 나 있다. 140여 년 전 처음 이 땅에 발을 딛을 때에도 그랬다. 강제이주 당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옥토로 만든 솜씨도 그랬다. 그들은 그 누구도 해 낼 수 없는 ‘업적’ 을 이루어놓았다. 소비에트 정권 시절에 농사를 통한 근로영웅의 주인공 중 70% 이상이 고려인이었다니, 그 탁월한 ‘감각’ 과 ‘솜씨’ 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곳 연해주에서라고 다르겠는가. 그러나 첨단문명을 자랑하는 21세기에 트랙터 한 대 없이 농사짓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다시 60여 년 전 황무지에 버려진 강제이주의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농사는 ‘하늘’ 이고 ‘밥’ 이지만, 너무도 열악한 상황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기술과 노력과 열정을 갖고 있음에도,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환경이 그들을 더욱 힘겹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내 땅 한 뙈기가 없어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고, 기껏 생산한 야채 한 덩이도 마음 놓고 판매할 공간이 없으며, 그나마도 운송수단이 여의치 못해 썩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이곳의 현실이다. 말 그대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겨운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얼굴을 가진 그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라는 시공간 속에서.

누구든 러시아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길가의 그들을 보라. 그들의 얼굴과 말소리와 표정을 주목해 달라. 내 어머니 같고 내 아버지 같은 그들이 파는 한 덩이의 감자는 곧 ‘밥’ 이며 ‘약’ 이며 ‘물’ 이며 ‘옷’ 이며 그들의 ‘아이’ 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의 땅에 뿌리는 서러운 유랑의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