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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한글 백일장 열려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8-12-23 00:00:00조회572회
71년 전 강제 이주민 손녀 “나는 고려인이니까 …” 2000㎞ 달려와 백일장 참석 [중앙일보]
중앙일보-성균관대 주최 카자흐 한글 백일장
반인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 품에서 듣던 한국말을 어렴풋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 중에서 한글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반인나는 16일 크질오르다에서 기차를 타고 24시간이 걸려 2000여㎞ 떨어진 알마티에 도착했다. 중앙일보와 성균관대 21세기 한국어위원회(위원장 이명학 사범대학장)가 공동 주최한 한글 백일장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나는 고려인이니까…응, 한국말 알고 싶어서. 한국말 알면 취직도 잘되니까….” 더듬거리며 한국말을 하는 반인나는 존댓말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았다.
18일 오전 알마티의 카자흐스탄 국립대학 동방학부 1층 도서관에서 한글 백일장이 열렸다. 타라즈 사범대, 부케토브대 등 12개 대생 35명이 참가했다. 금·은·동상 수상자들에겐 성균관대 대학원 전액 장학금의 특전이 주어진다.
고려인·카자흐계·러시아계·독일계…. 굴곡 많았던 카자흐스탄의 역사를 반영하듯 참석자들의 인종분포는 다양했다. 이날 백일장의 시제는 ‘친구’였다. 참가자들은 비뚤거리는 글씨로 글을 써 내려갔다.
한 율리아(21·여·카자흐국립대 3)는 외모만으로는 러시아인이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러시아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리아는 “나는 고려인”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7세 때 돌아가셨어요. 한글 꼭 배우라고 하셨어요. 우리 할아버지 북한에서 왔어요. 소설가였는데 할아버지가 쓴 책을 읽고 싶어 한국말 배웠어요.”
율리아의 할아버지 한대용은 김일성대와 모스크바대를 졸업하고 이 지역 고려극장에서 희곡을 썼던 작가였다. 김일성에 반대하며 북한에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카자흐스탄에 남았다고 한다. 율리아는 올해 초 역시(한국사능력검정시험)를 잘 치러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 학생들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다. 대통령 장학금도 받는 재원이다. 그는 은상을 받았다.
금상은 카자흐인인 아이다로바 아이게림(21·여·카자흐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학 4)이 차지했다. 버스에서 만났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의 전우 얘기를 전하면서 친구의 소중함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게림은 알마티 방송사에서 내년에 전파를 탈 예정인 한국 드라마 ‘주몽’을 카자흐어로 번역하고 있을 만큼 한국어에 능통하다. “한국 문화를 더 공부한 다음 외교관이 되어서 카자흐와 한국을 잇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동상을 받은 고려인 신 이라나(21·여·카자흐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학 4)는 교환학생 기간 중에 한국에서 만났던 베트남 친구 이야기를 썼다.
심사를 맡았던 성균관대 원만희 교수는 “카자흐스탄에서는 14년 전에 한국어 교육이 처음 시작돼 역사가 짧지만 줄거리가 있는 작문들이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고려인들은 한글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 공용어인 러시아어와 현지어를 배우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1991년 이후에야 한글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명학 학장은 “이들은 한글을 통해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의 흔적을 찾아오고 있는 것”이라며 “일종의 정신의 귀향일 텐데,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알마티=강기헌 기자
◆한글 백일장=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첫 백일장이 열렸다. 올해는 중국 상하이(4월)와 몽골 울란바토르(10월), 카자흐스탄 알마티(12월)에서 잇따라 개최됐다. 지난해 베이징 백일장에서 수상한 중국 학생 2명은 현재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성균관대 한국어위원회는 각 지역에서 대회가 끝날 때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들과 참석자들의 명단을 정리해 네트워킹해 왔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글을 배우는 외국 학생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게 한국어위원회의 목표다.@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