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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할머니 러시아 한인 역사 책 낸다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8-08-31 00:00:00조회658회
오는 11월 자선전을 출판하는 고려인 4세 라나김은 할머니의 거친 삶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말했다.
“우리 인생은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폭풍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모르고 그 뿌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폭풍속에 다 날라가버릴 것입니다.”
KGB(옛 소련 비밀경찰)의 단속과 감시가 채 가시지 않은 1991년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명문 레닌그라드 대학을 갓 졸업한 고려인 4세 라나 김(본명 스베틀라나 김)은 모스크바 암시장에서 미국행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암표상과 흥정을 한다. 의사 부모를 둬 남부럽지 않게 살던 라나가 위험을 무릎쓰고 암표를 구하려 했던 이유는 뭘까.
“자유였습니다. 소련체제 붕괴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자유와 기회를 찾아 미국행을 선택했습니다. 러시아에선 도저히 미래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해 미국 샌프란시코에 도착한 라나는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마약중독자와 노숙자를 위한 시설에서 빨래와 청소를 했고 베이비시팅 등 온갖 궂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길 10년. 2001년 시민권을 취득한 라나는 지금의 러시아인 남편과 미국에서 결혼을 했고 프리랜서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라나의 가슴 속 깊은 곳엔 한가지 숙제가 남아있었다. 구한말 시베리아로 이주해 얼음땅을 깨며 농사를 지었던 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당한 할머니의 한맺힌 삶을 죽기 전에 한권의 책으로 남겨야 한다는 절박감이 그의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모스크바에 계신 할머니(한국이름: 배 옥)는 지금 93세의 고령이지만 아직도 강제 이주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1937년 다른 고려인들과 함께 180일동안 기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되는 과정에서 남동생도 잃어버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생을 겪었답니다. 그런 고초를 겪었던 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책을 쓰게 됐습니다.”
고려인들에게 가혹한 만행을 자행한 당시 공산당 실무자들의 실명을 책에 밝히겠다는 라나는 “출판사와 러시아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실명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많았지만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굴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라나가 집필 중인 책의 제목은 ‘하얀 진주: 정치 난민이 된 어느 고려인의 회고록(White Pearl: A Memoir of a Soviet-Korean Political Refugee)’. 하얀 진주는 올가 할머니의 한국 이름에서 따왔다.
올해 11월 출판 예정인 이 책을 통해 라나는 잊혀진 역사를 발굴, 신이 우리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와 지금도 어딘가에서 힘들게 살고 있을 이민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나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한푼도 없이 미국에 왔습니다. 가장 밑바닥 삶을 살면서도 결코 우리 조상을 잊은 적이 없었고 또 그분들의 삶을 통해 힘을 얻었습니다. 미국 이민자들 중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 모두 내 책을 읽고 힘을 얻어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기 바랍니다.”
11월 자서전 출판과 함께 라나는 또 다른 일을 구상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26개국의 전쟁이야기를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한국이나 미국 입장에서의 한국전쟁이 아니라 참전 26개국 각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전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이다. 라나는 이를 위해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용사의 증언을 수집하고 있으며 한인들의 관심과 도움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