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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뜨란지트 1937'의 정호붕 연출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8-04-04 00:00:00조회662회

<스테이지2010> 음악극 '뜨란지트 1937'의 정호붕 연출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4.03 10:42 | 최종수정 2008.04.03 10:42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기자 = "고려인의 아픔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해 보겠다고 마음 먹은 지 거의 20년만에 이 작품을 하게 됐습니다."

3일부터 서울 흑석동의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음악극 '뜨란지트 1937'의 연출을 맡은 정호붕(45)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교수는 무척이나 감회가 깊은 듯 하다.

이 작품은 연해주 고려인들이 극심한 차별과 냉대를 감수해 가며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투사도, 영웅도 아닌 평범한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린 음악극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의 내용을 토대로 작가 사성구 씨가 번안.개작한 대본에 김성국 중앙대 국악대학 교수가 곡을 붙인 거의 창작에 가까운 극.

"1990년에 조상현, 신영희, 김일구 이런 선생님들하고 극단 미추 단원들이 러시아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를 소재로 한 창극 '아리랑'을 갖고 중앙아시아 순회공연을 했었어요. 저는 그 때 고려인 아이 역을 맡았었는데 그 때 이후 고려인의 아픔을 소재로 한 작품을 언젠가는 만들어 보리라 생각했어요."

그 직후 모스크바의 국립슈킨연극대학에서 7년간 연기지도 공부를 하고 온 다음 서울에서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출을 하게 됐고 그 이야기의 내용과 고려인의 아픔을 한 데 엮어 내보겠다고 한 것이 지금에야 결실을 맺게 됐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러시아어로 '뜨란지트'는 영어의 '트랜짓(transit)'과 어원이 같은 말로 횡단, 사람 또는 화물의 운송을 뜻한다.

"공식문서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뜨란지트 1937'은 1937년에 스탈린 정부가 연해주에 살던 17만명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으로 강제이주시킬 때 비밀지령의 암호명이었답니다. 음악극의 제목은 거기서 따 온 겁니다."

스탈린 정부는 이주 전 2천500명에 달하는 고려인 지식인들을 체포.처형했고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단 사흘만에 연해주 고려인들을 화장실은 물론 마실 물도 없는 화물차에 실어 6천여㎞나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내동댕이쳤다.

"이번 음악극의 주 내용은 강제이주 그 자체라기 보다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처럼 한 가족, 여기서는 최빅돌 집안이죠, 최빅돌과 그 딸들이 혼인을 두고 겪는 갈등과 삶의 얘기입니다. 그 중간중간에 핍박과 고난, 외부로부터의 압력 등에 대한 얘기가 대사로서 삽입이 되죠."

그러나 극중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주인공 최빅돌의 모습은 세상을 긍정하는 희망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이 작품 속에는 신명나는 우리 노랫가락과 멋스러운 춤사위가 한데 어우러져 있고 무엇보다 우리 전통극의 미학적 요소라고 할 한의 정서와 해학의 정서가 씨줄과 날줄처럼 조화돼 있다.

"국악대학의 졸업생과 재학생 등 모두 45명이 출연을 하는데 처음에는 고려인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애환을 그런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 연기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고려인 인사도 초청해 증언도 들려주고, 고려인 언어도 배우도록 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도 보여주면서 고려인들의 삶과 애환을 연기해 낼 수 있도록 지도했습니다."

'뜨란지트 1937'은 중앙대 국악대학이 우리 음악과 연희의 전통에서 고전의 가치를 찾아 세계무대로 나아갈 한국 음악극의 생산을 주도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한 음악극연구소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음악극이다. 이 연구소 소장으로 이번 공연의 기획을 맡은 사진실 교수는 서양뮤지컬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우리 음악에 기반을 둔 독창적 형식의 음악극이 만들어졌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공연은 3일부터 6일까지 모두 6회(평일 오후 7시, 주말 오후 2시와 7시).
정호붕 연출은 이 작품의 공연을 계기로 아직도 많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에서 높아졌으면 한다면서 기회가 되면 이 '뜨란지트 1937'을 연해주 무대에 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