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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항일의병 `본거지` 찾았다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7-08-16 00:00:00조회583회
해외 항일의병 `본거지` 찾았다 [중앙일보]
안중근 의사·홍범도 의병장 활약 연해주 연추하 마을
연해주 지역은 구한말 한국 사람들이 대거 이주해 한인촌을 형성했으며 안중근 의사와 홍범도 의병장이 활동한 곳이다. 최근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 심헌용 박사는 러시아 연해주 하산 크라스키노의 추카노보 마을(연추하 마을.燕雛河里) 상류지역에 330만㎡(100만 평) 규모의 한인촌과 항일 의병운동 훈련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해주 하산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분쟁 지대로 2003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처음 개방됐다. 올 5월 28~31일 현지를 답사하고 관련 연구를 해 온 심 박사에 따르면 연추하 마을의 항일 의병 본거지는 1908년 봄부터 형성됐다. 당시 이 마을에는 단지동맹을 결행한 안중근 의사 등 12명의 애국지사가 속한 동의회가 설립됐다. 동의회는 한인들이 상호부조와 민족자치, 의병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동의회는 연추하 마을의 도헌(이장)이면서 재력가였던 최재형이 지원해 조직이 결성됐다. 최재형이 동의회 총장을 맡고 조선 황실에서 파견한 간도관리사 이범윤이 부총장을 맡았다는 것이다. 또 전 주러 한국 공사 이범진의 아들로 헤이그 특사였던 이위종이 의장을, 독립운동가 엄인섭이 부회장을 담당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일대를 관장하는 지회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연추하 마을의 의병 본거지가 활발해진 것은 이범윤이 항일 의병운동을 강화하면서부터다. 이 간도관리사가 무장세력인 창의회를 조직하고 국외 의병세력을 통합, 이곳에서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했다. 의병들이 1908년 육로와 해로를 통해 실행에 옮겼으나 일제와의 전투에서 실패했다. 심 박사는 현지에 거주하는 이 표트르(89)씨가 "창의군은 연추하 마을에 있었다. 그곳으로 하루에도 수십 대의 마차가 들락거렸던 것으로 들었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문헌 등을 통한 학계와 관계기관의 고증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