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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손자’허 블라디슬라브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9 00:00:00조회525회

‘장군의 손자’허 블라디슬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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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caption.gif사진왼쪽부터 형 허 게오르기, 허 블라디슬라브, 부인 루드밀라, 아들 허 알렉산드라.

‘조국’(祖國). 이 땅의 우리보다 해외에 사는 한민족의 가슴에 더욱 진하게 울리는 단어이다. 조국 땅을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동포들에겐 더 그렇다.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 살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허 블라디슬라브(55·경향신문 2005년 6월27일자 매거진X M1면 보도). 그는 구한말 항일 의병활동을 하다 순국한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1854~1908)의 손자다. 금광 발굴에 참여하는 지질학자였던 ‘장군의 손자’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키르기스스탄에서 트럭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그는 할아버지의 조국을 기억하려 한글을 꾸준히 배워 왔다. 다행히 그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다큐작가 윤덕호씨의 도움으로 그는 현재 의료기기 생산업체인 비겐의료기 경기 안성공장에서 6개월째 일하고 있다. 1백만원 가량의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키르기스스탄에 살고 있는 부인과 아들에게 꾸준히 송금해 왔다.

며칠 전 그는 반가운 손님을 서울에서 만났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살고 있는 그의 부인과 아들, 그리고 형님이 찾아온 것이다. 반년 넘게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온 그로서는 가족과의 재회가 기뻤다. 얼굴이 부쩍 빠진 부인의 손도 잡아보고 멀리까지 찾아온 의젓한 아들의 머리도 쓰다듬어 보았다. 형님과의 따뜻한 포옹도 잊지 않았다. 좁은 여관방이지만 모처럼 가족들이 둘러앉아 설날 덕담도 나누었다. 한국 음식도 함께 맛보았다.

식사를 마친 그가 가족들의 손을 잡고 먼저 찾은 곳은 허위선생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서대문 형무소 터. “할아버지에 대한 슬픔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서대문 형무소 비석에 새겨진 할아버지인 허위 선생의 이름을 손으로 비비며 그가 흘린 말이다.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이지만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 의병 허위의 손자라고 불리는 것이 더 자랑스럽다고 했다. “한국을 찾은 형님과 아들도 할아버지의 땅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짧은 말을 내뱉으며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경북 김천으로 향하는 기차에 가족과 함께 서둘러 올라탔다.(문의 02-2273-1237)

〈글·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