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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4~5세대, 1~3세대와 ‘경계’ 뚜렷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9-26 00:00:00조회5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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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일궜던 1~3세대와 크게 다른 모습의 신세대 고려인들. 그룹 ‘안시티’를 구성해 가수로 활동중인 이안드레이·박나타샤·고가이스타스(위쪽 사진, 왼쪽부터), 우즈베크제1방송 아나운서 박이리나(오른쪽 사진), 고가이 안드레이 고려인문화협회 청년협회장(왼쪽 사진) 같은 이는 이런 ‘새 고려인’을 대표한다. 이들에게 ‘한류’는 민족을 경험하는 새로운 수단이다. 타슈켄트의 세종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젊은 고려인과 우즈베크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아래 사진)

 

고려인 4~5세대, 1~3세대와 ‘경계’ 뚜렷  / 미국·일본으로 나가 공부·직장 꿈  / 30대 사업가 10~15%가 고려인

 

강제이주 70년 중앙아시아의 한인들(하)

“노래부르는 게 좋아요. 옷이 너무 야하다고 매일 부모님과 다투지만, 글쎄요, ‘가수’다워야 하잖아요.”

지난 9일 타슈켄트에서 만난, 17살 소녀는 가수다. 대륙의 풀처럼 건강하고 당돌하기만 한 박나타샤. 고려인 5세대다. 69년 전 이맘때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한달 여 동안 짐짝처럼 기차에 실려 우즈베키스탄 황무지에 버려진 ‘한’의 그림자를 소녀에게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한국어 열풍이 불고있지만, 소녀는 한국말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능숙한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5년째 영어 회화 개인교습을 받고 있어요. 돈이 좀 들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거든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미국 인기가수)를 좋아하는 소녀의 눈망울엔 ‘서구권 어느 무대에 오르는’ 소망이 가득 배어있다.

박이리나(25)씨는 최대 국영방송사인 우즈베크 제1방송의 유일한 고려인 아나운서다. 넉넉지 않은 월급이어서, 번역일 등 이른바 ‘투잡’을 해야하지만, 박씨는 “돈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2001년 6:1의 ‘아나운서 경쟁률’을 뚫었다.

10대에서 30대로 성장한 고려인 4~5세대가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를 변모시키고 있다. 1~3세대와의 사회·문화적 경계도 뚜렷하다. 옛 소련 사회에 적응해야 했던 고려인 1~3세대와 달리, 이들 4~5세대는 올해로 독립한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성장했다. 이런 사회·역사적 배경 속에 이들은 또 다른 의미의 1세대가 되고 있다.

타슈켄트에 있는 동방대학교 김빅토리아 한국어학과장(45·여)은 “선택의 기회가 많지 않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근면과 성실로 성공했던 이전의 고려인 세대와 달리, ‘젊은 고려인’들은 자유와 경쟁의 의미를 익혀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공직, 의사직 등에 집중됐던 선대의 희망 직업군도 사업·연예·정보기술직 등으로 넓어졌다.

고려인 1세대나, 2~3세대는 그 어느 민족도 따라오기 어려운 ‘향학열’을 무기로 옛 소련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했지만, 옛 소련 해체 뒤 여러 독립국에서 발호한 민족주의는 ‘소련화’된 소수민족 고려인의 입지를 크게 악화시켰다. 때문에 2·3세대는 물론, 리 이고르 데크딘노도비치(35·비바산 우즈베크지사장)씨 같은 많은 고려인 4세대들도 모진 시련을 겪어야 했다. 리씨는 21살 때 중고물품가게를 시작한 이래 사업에 실패한 것만도 8차례다. 1994년 국가 화폐가 바뀌면서 그가 갖고 있던 돈은 모두 휴지조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젊은 고려인’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역경을 딛고 일어섰듯이, 또다시 고려인 사회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역시 한민족 특유의 근면성과 향학열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의 인구 비중은 1%에도 못미치지만, 현재 30대 사업가의 10~15%가 고려인이라는 게 현지의 평가다. 고려인문화협회의 청년협회장 고가이 안드레이(39)씨는 “러시아어 하나면 충분했던 때와 달리 지금 세대엔 우즈베크어, 영어, 한국어를 갖춘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며 “직장 월급이 적어 사업을 꿈꾸는 실력 있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어서 이들의 성공이 곧 우즈베크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향해 열린 문은 ‘도전’하는 신세대 고려인들의 ‘관문’이기도 하다. 박이리나씨의 친구 10명 가운데 8명이 미국, 일본, 러시아 등지로 나가 공부하거나 직장을 구했다. “다들 넉넉한 집들 아니냐고요? 돈 없으면 빌려 나가고, 열심히 벌어서 갚아요. 저도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옷가게 점원을 했던 걸요.”

우즈베키스탄 독립기념공연 행사가 성대히 치러 지던 지난 1일, 초대 가수 20명 가운데 가장 체구가 작은 여가수가 눈길을 끌었다. 고려인 4세대, 최조야(33)씨다. 국가독립기념 행사에 참석한 최초의 고려인 가수다. 우즈베크어로 부르는 그의 열창이 행사장을 뜨겁게 달궜다. “우리는 타슈켄트, 이 거리에서 꿈을 꾸네, 하나가 되네~”

러시아어에 우즈베크어까지 배우느라 바빴던 젊은 고려인들 사이에서 ‘한국어 열풍’이 인 건 최근 2~3년이다. ‘민족’을 인식하며 동시에 넘어서야 했던 운명의 역사는 더 큰 궤적을 그리며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타슈켄트(우즈베크)/글·사진 임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