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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독립군 후손 허로자씨, 추석 때 한국 온다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9-29 00:00:00조회5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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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에 할머니 기사가 실렸어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 중인 한명숙 총리가 24일 밤(한국시각) 타슈켄트 시내 숙소에서 항일의병장 왕산 허위의 장손녀 허로자(80·왼쪽)씨를 만나 허씨의 기사가 실린 <한겨레>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타슈켄트/연합뉴스


 

 

비운의 독립군 후손 허로자씨, 추석 때 한국 온다
한명숙 총리, 전격 초청  “살아서 가게 될 줄은…”  80살 생일 앞 큰 선물

“고국에서 이렇게 나를 찾아와 주리라고는, 더군다나 할아버지 나라를 살아서 찾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망국의 한을 안고 70여년을 외롭게 살아온 ‘비운의 독립군 자손’ 허로자(80)씨가 한명숙 총리의 특별초청으로 다음달 6일 추석 전에 한국을 방문한다.

허씨는 구한말 항일의병장인 왕산 허위(1854~1908)의 손녀이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펴다 옥고를 치른 왕산의 장남 허형(일명 허학.1887~1940)씨의 둘째딸로, 왕산 직계 후손중 최고령 생존자다.

왕산 후손의 신산스런 삶은 네 아들이 1907년 왕산이 서대문형무소에서 1호 사형수로 처형된 뒤 가족 모두가 일경의 검문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시작됐다. 1926년 연해주에서 태어난 허씨도 1937년 옛 소련 정부의 극동 유민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부모와 함께 카자흐스탄을 거쳐 이국만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까지 흘러와 지금까지 미혼으로 살아왔다.

지난 24일(한국시각)부터 우즈베키스탄 공식방문에 나선 한 총리는 이날 밤 늦게 수도 타슈켄트에서 열린 고려인 동포 간담회에 앞서 허씨를 숙소로 따로 초청해, 그간 힘들고 고생스럽게 살아온 허씨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이 자리에서 한 총리는 “오늘 고려인 동포단 간담회 참석자 명단을 보니 할머니 이름이 빠져 있어, 제가 꼭 모시고 싶어 이렇게 오시라고 했다”며 “저희가 어떻게 도와야 할지, 한국에는 언제쯤 오실 수 있는지 말씀해 달라”며 한국 초청의사를 전달했다. 허씨는 서툰 한국말로 “한국에 꼭 가고싶다. 다음달 초엿새가 추석인데…”라고 답변했다.

한 총리는 그자리에서 “우리 외교부가 할머니를 반드시 조국으로 모실 것”이라고 약속했다. 곧바로 배석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차관에게는 “할머니께서 이번 추석 때 꼭 고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특별 지시까지 내렸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25일 허씨 본인은 물론 현지에서 함께 살고있는 허씨 조카 가족들의 의사를 두루 타진한 뒤 고국방문 시기와 동행인 규모 등을 참작해 추석 연휴 이전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비행기 좌석을 예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 차관도 이날 “허씨 일행의 출입국 관리는 물론 한국에서의 친지 방문 일정도 외교부와 해외동포재단에서 철저히 보살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후 허씨가 영구귀국 의사를 희망할 경우에 대비해 ‘특별귀화’와 관련된 법적 제반 여건을 살피기로 하는 등 후속대책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오는 30일 80회 생일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게 된 허씨는 면담 막바지에 한 총리가 내민 손을 꼭 쥐면서 “나는 이전 것은 모두 잃어버리고 살았고, 더 어떻게 할 계획도 없던 사람이었다”며 “고국에서 이렇게 나를 환영해 주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감격해했다.

허씨는 한국을 방문하면 제일 하고싶은 게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미에 있는 할아버지 왕산의 묘소를 찾아뵌 뒤, 고국의 발전된 모습을 두루 보고싶다”고 말했다.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물고기와 미역’을 먹고 싶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최익림 기자 choi21@hani.co.kr


‘서울 진공작전’ 펼친 의병장 후손은 100년동안 대륙 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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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로자(80·왼쪽)씨와 언니 경랑(82·1997년 사망)씨가 1958년에 함께 찍은 사진. 21살의 나이로 의병활동에 참여한 뒤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박경 허형 선생은 강제이주된 카자흐스탄에서 두 자매만 남겨둔 채 1940년 9월28일 숨을 거뒀다.

왕산 허위 선생 가문은

애국지사 왕산 허위 손녀 허로자(80)씨가 고국을 70여년 만에 처음 방문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한국 근·현대사 과정에서 타의로 외국에 강제이주돼 핍박받았던 재외동포와 애국지사 후손들에 대한 한명숙 총리의 각별한 관심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리비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이번 총리의 공식 순방국 세 나라는 모두 사회주의 체제여서 총리 의전행사 참석 대상자들에 대한 순방국 내부의 검열과 통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했다. 이때문에 나흘 만에 허씨를 수소문해 동포 만찬장에 참석하게 만든 것 자체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총리실 쪽의 설명이다.

리비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순방을 앞둔 한 총리는 지난 18일 출국하기 직전까지 에너지 협상 등 순방 당사국과의 현안 보고를 챙기는 데 모든 관심이 쏠린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평소 언론보도를 깐깐하리만치 챙겨보는 한 총리도 허씨의 기구한 사연을 담은 9월16일치 <한겨레> 보도에 대해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한 채 전세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총리는 순방 사흘째인 지난 20일 두바이에서 리비아로 전세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국가보훈처가 <한겨레> 보도와 관련해 사실을 확인한 결과, 허씨가 왕산 허위의 직계 후손으로 입증됐으며, 11월부터 국가유공자 연금형식의 보상을 받게 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허씨가 불우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곳이 총리의 마지막 순방지인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것도 총리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한 요인이 됐다. 한 총리는 비행기 안에서 외교부 당국자에게 곧바로 허씨를 타슈켄트에서 열리는 동포 만찬장에 극진히 모셔와야 한다는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외교부와 총리실 의전팀은 곧바로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리비아 순방기간 동안 협상 현안과 일정 조율에 치중하면서도, 수시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과 핫라인을 가동했다. 결국 21일 사마르칸트로 달려간 대사관 직원들이 탐문 끝에 허씨 소재를 파악했고, 24일 동포간담회 초청장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한 총리가 순방 중 주말에도 개인 시간을 못낼 만큼 빡빡한 일정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례적일 만큼 허씨를 챙긴 것은, 비운의 근·현대사에서 불우하게 방치된 애국지사 후손를 반드시 챙기겠다는 각별한 사랑과 관심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최익림 기자 choi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