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친절한 도우미가 되겠습니다.

동포들과의 교류협력 및 지원협력사업에 대한

새소식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타향살이 몇해던가~ 청춘만 늙어~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10-05 00:00:00조회543회

타향살이 몇해던가~ 청춘만 늙어~ 이국만리서 부르는 ‘한가위 아리랑’

 

목에 북을 메고 두드리던 김 니콜라이(80) 할아버지는 힘에 겨운 듯했다. 나이를 속일 수 없는 탓이었을까. 하지만 옆에 있는 주 똘라(72)씨가 흥겹게 아코디언을 켜자, 손목 움직임이 덩달아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코디언과 북의 선율에 맞춰 할머니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1일 오전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연방국의 하나였던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 한국 카페(음식점)에서 한복을 차려 입은 고려인 할머니들이 팔월 한가위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비슈케크의 재래시장인 오쉬 주변에 사는 고려인 은퇴자들의 모임인 ‘은빛 노인회’ 회원들. 60대를 넘어서도록 고국 땅을 한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이들이지만, 마음은 고국의 팔월 한가위로 달려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은 원래 김창묵이야. 하지만 이젠 이런 내 이름을 알아 불러 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 이곳으로 온 지 벌써 69년이 지났어. 친구들도 모두 상세(사망)하고, 나도 이제 고향 못 가보고 죽는 일만 기다리게 됐으니….” 우리 말로 띄엄띄엄 말하는 ‘장고 할아버지’ 김 니콜라이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11살 때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끌려와, 배 곯는 날이 더 많은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자, 1958년에 미련 없이 혼자 ‘날씨 좋고 물가가 싼’ 키르기스스탄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미 고향을 갈 수 없게 됐는데 어디 간들 달라질게 있겠어….”
학교 때 배웠다는 아코디언 솜씨가 일품인 주 똘라씨. 그는 고려인 노인회 모임마다 불려다니는 단골악사이다. “생활이 고될 때마다 아코디언으로 마음을 달래며 살아왔어요.”
그 역시 1937년 부모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강제로 기차에 실려 끌려온 곳이 우즈베키스탄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좀더 나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또 다른 나라인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이들은 이렇게 울며 웃으며 ‘고향의 봄’ ‘타향살이’를 불렀다. 백발이 성성한 고려인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시울이 벌게졌다.

“예전에 추석 때면 집집마다 증편(송편)을 만들고 통닭, 물고기, 능금 등을 차려 제사상에 올렸어. 그런데 이제 모두 사라지고 산에만 가지.” 성묘 가는 것을 이들은 우리가 산소에 가듯이 산에 간다고 표현했다. 은빛노인회 회장인 유 에까뜨리나(65) 할머니는 자손들이 한국말을 잊듯이 이젠 추석도 잊혀진 명절이 되어 간다고 아쉬워했다.

의사를 하다가 은퇴했다는 주 안나(67)씨는 한국에 간 둘째딸(31)이 최근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집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걱정했다. 주 할머니는 “찾아간 고국에서 환대 받지 못하니 고국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우리에겐 나라 이름조차 생소한 키르기스스탄. 척박한 이 땅에도 채송화, 들국화 등 한국에서 흔히 보는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직선거리로 4000여㎞나 떨어진 이국이었지만, 이곳의 가을 하늘에도, 고려인의 가슴에도 이렇게 추석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