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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독립운동의 정신을 찾아서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6 00:00:00조회535회

연해주의 작은한국 빨치산스크의 독립운동가들의 무덤을 찾아서...!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톡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빨치산스크는 인구 3만 명의 작은 소도시이다. 그런데 인구수에 비해서는 비율적으로 연해주에서 제일 많은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또한 이곳 빨치산스크이다.
크고 작은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도시가 아득하게 품기워있고,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미루나무가 빨치산스크의 시가지를 더욱 아기자기하게 단장하고 있다.
이곳 야산부근에는 이름모를 독립운동가들과 한인들의 무덤들이 즐비하게 있다.
약 130여개의 무덤들이 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더 많은 무덤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그중에 한곳을 찾아갔다.
안차록씨의 무덤이다. 중국 훈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쫓겨서 이곳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선인이셨다. 지금은 할머님과 자식들만 이곳에서 살고 계신다.
할머님과 손녀딸과 함께 무덤을 찾아갔는데 시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야산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는 안차록씨외에도 2분의 독립운동 무덤이 안치되어 있었고, 한인들의 무덤이 30~40구 안치되어 있었다.
이곳으로 오신 분들은 대부분 훈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3년도경 넘어 오신 분들이었다.
훈춘에서는 땅굴을 파고 숨어살다시피 하였다한다.
이곳에 와서도 남편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아침일찍 나가서 밤에 늦게 들어오고 결국은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옥고를 치루다가 너무 심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고 한다.
현재 생존해 계시는 리올가(75세) 할머님의 아버님도 리관섭씨라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시비르시키에 끌려가서 옥고를 치루다가 1938년도에 잠드셨다고 한다.
리올가 할머니의 삼촌되시는 분은 불에 태움을 당하시고, 리올가 할머님은 자기 고향이 어디이신지도 모르고 지금 빨치산스크의 외곽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리올가 할머님이 목청을 돋우며 부르신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
“소비예트 연방에서 살길을 찾아라! 소비예트 연방에서 살길을 찾아라!”
“고국산천을 떠나서 수천리 타향에
물설고 산설은 타향에 객으로 유하니
섭섭한 마음 고향뿐이오
다만 생각하노니 정든 친구여!“
불과 100여 년 전에 연해주 곳곳을 누비며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오늘도 동토의 땅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도 있다. 머나먼 이곳 타향에서...
우리는 8·15 광복 59주기를 앞두고 이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