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친절한 도우미가 되겠습니다.

동포들과의 교류협력 및 지원협력사업에 대한

새소식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볼고그라드의 히로시마 거리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6 00:00:00조회469회

볼고그라드의 히로시마 거리


내가 살고 있는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 시내에는 ‘히로시마’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다. 2차대전의 격전지로도 유명한 이곳에 왜 이런 이름의 거리가 있을까? 물론 볼고그라드와 히로시마의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2차대전 때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두 도시는 비극적인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전쟁 이후 ‘평화도시’라고 명명된 히로시마가 여러 도시들과 맺어온 자매결연이 볼고그라드에까지 이어졌고, 그 결과로 ‘히로시마 거리’가 생겼을 것이다. 내용이야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히로시마 거리’를 두고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고려인들 때문이다.

볼고그라드는 약 3만명으로 추정되는 고려인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갈 전망이다. 옛소련 해체 후, 독립된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정세 불안을 이유로 러시아로의 이주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140년 전 시작된 고려인들의 유랑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인데 이 유랑의 원인은 일본의 한반도 강제점령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폭압을 피해, 혹은 맞서기 위해서 두만강을 건너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으로 이주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후손이 지금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여전히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과거를 들먹이며 일본에 대한 단죄나 적대적 감정을 키우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분명한 것은 일본은 지금까지도 2차대전 당시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잔혹한 일을 벌였던, 한마디로 악을 자행했던 근본적인 사고와 이념에 대한 비판이나 반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힘을 통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필요한 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국들의 신뢰와 존경을 얻는 것은 멀고 먼 일로 보인다.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교훈은 ‘인간과 평화의 소중함’이다. 2차대전에서 가장 극심한 피해지역 중 하나였던 볼고그라드도 ‘평화도시’로 명명될 것이다. 그 자리가 지난날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모여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자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고려인들도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평화를 위한 의미있는 큰 걸음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