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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장군의 정신 전해 달라”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6 00:00:00조회519회

재외동포신문  
홍범도 장군 손녀 한 빨리나 니꼴라예브나
한 빨리나 니꼴라예브나, 73살의 평범해 보이는 고려인 할머니.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우렁찬 목소리가 나오는지 장군의 손녀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따뜻한 구들로 안내한 후 예정보다 우리가 일찍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지 못했다며 방으로 들어가 예쁜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장군의 얼굴에 누가 되면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서로 큰절을 하고 앉자, 적어도 그녀의 기억 속에 홍범도 장군은 역사 속 한 귀퉁이의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아직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영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럴 날 올 줄 알았으면 전부 기억하고 있을 텐데…할아버지가 교훈을 줬지. 그걸로 지금까지 내 아들 손녀들에게도 교훈을 주는데, 좋은 일은 말 할 수 있지만 궂은 거 보면 당최 말도 하지 마라!”

할머니는 자신의 흐릿해진 기억을 할아버지의 교훈 탓이라 했다. 홍범도 장군은 말 옮기는 것을 절대 못하게 하셨단다. 험한 시절 일본군의 밀정과 이끌던 사람들의 단합을 위한 좋은 방책이었으리라.

연해주 고려인의 역사가 그러하듯 1937년에 할머니 역시 장군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고 1943년 돌아가실 때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살았다고 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장군은 그곳 고려인들에게 영웅이었고 그런 그에게 소련정부 역시 존경을 표했으며 그의 집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했다.

장군은 사람들에게 혁명과 독립전쟁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을 무릎에 앉혀 놓고 얘기하시길 좋아했고 제일 귀여워해 자주 업어 주시곤 하셨다고 회상했다.

장군은 돌아가실 때까지 위엄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돌아가신 후에는 우리의 국립묘지격인 도시공원에 묻혔고 지금도 카자흐스탄의 ‘끄즐아르다’에는 홍범도거리가 남아 있다고 했다. 2년만 더 사셨다면 그토록 바라시던 독립을 보았을 텐데 그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많이 안타까워했다.

떠나는 우리일행을 할머니는 마을 어귀까지 마중나와 ‘장군이 조국을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잘 알려 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독립인사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오래도록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할머니의 모습에 뒤통수가 자꾸 간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