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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동포는 왜 고려인이냐”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6 00:00:00조회552회

러시아동포는 왜 고려인이냐” 불만섞인 질문 던지다가도

“한국은 언제나 마음의 조국” “40도 이하의 술은 술도 아니고, 40도 이하의 추위는 추위도 아니고, 40킬로미터 이하는 거리도 아니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이 말처럼 길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자작나무숲 사이로 뻗어 있었다. 들녘에는 보라색 이반차이꽃들과 흰 들국화와 유채꽃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간혹 지루한 전나무 숲이 끝나면 창백한 러시아 여인들의 다리처럼 곧게 뻗은 자작나무숲들이 초원 저 멀리 하나의 배경처럼 또다시 이어졌다.

흐린 날이면 지평선 저너머로 키 작은 잿빛 구름들이 내려앉았다. 간혹 대장정 차량의 숨가쁜 엔진을 식혀 주려는 듯 한줄기 소나기가 4륜 구동 테라칸의 보닛을 두드리고 지나갔다.

6일 오전 8시30분 노보시비리스크를 출발한 대장정 차량은 저녁도 거르고 차선도 제대로 없는 밤길을 달린 끝에 이날 밤 11시가 넘어서야 720㎞ 떨어진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도착했다.

25일 모스크바를 출발한 지 열이틀 만이었다. 거리로는 5천여㎞. 수많은 도시들을 지나며 바라본 러시아는 가능성과 혼란이 겹쳐진 곳이었다.

시차 때문에 시계바늘을 이틀에 한번씩 조정해야 하는 더없이 광활한 국토는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높은 사고 수준이 일행을 더욱 놀래게 했다. 아무리 허름한 차림의 러시아인들도 자기 나라의 문제에 대해 던지는 질문마다 정연한 논리로 답변을 했다.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서로 보완할 점이 많은 이상적인 파트너”라는 얘기가 많았다.

대장정팀에 합류한 고려인들은 처음엔 서먹해하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 우랄산맥을 넘어가는 차 안에서 에르네스트 김은 “고려인이란 말은 한국에서 처음 들었다”며 “같은 시기 하와이로 이민간 이들은 재미동포, 일본으로 간 이들은 재일동포로 부르면서 왜 러시아 동포들은 고려인이라고 부릅니까?”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고려인들을 이등 국민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러시아 동포들과 한국사람들의 마음의 벽이 시작된다”며 “하지만 최근 고려인들의 경제력이 커지고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호전되면서 변화가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5일 노보시비리스크를 관통해 흐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 중의 하나인 오브강(5410㎞) 위에 띄운 유람선에서는 대장정팀과 노보시비리스크 주의원 벤야민 박 등 현지 고려인, 러시아인 지역 유지 및 주의원 등이 참여한 환영연이 벌어졌다. 오가는 보드카 몇 잔에 국적과 민족을 넘어 모두가 하나가 됐다. 강변에서는 러시아인들이 파라솔을 설치해 놓고 짧은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고려인 보리스 정(53)은 사회주의 시절 노보시비리스크 교통국 전철 총책임자까지 지냈지만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재빨리 변신해 지금은 한국과의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아버지 고향이 경남 사천인 보리스 정은 9월부터 아들이 울산공대에서 석사과정을 밟는다고 자랑했다. 그는 “한국은 언제나 마음의 조국”이라며 “남과 북,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더욱 발전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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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울퉁불퉁 험난한 산맥
덜컹덜컹 달리다 펑크 또 펑크
“사고 안나서 다행” 안도 “타이어는 생명입니다. 로저!” 시베리아의 대자연은 감추어 두었던 비경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았다. 원시림과 대초원으로 달려드는 배기량 3500㏄ 지프의 질주에 작은 돌과 흙먼지로 대응하며 문명의 불손함을 나무랐다.

동쪽 원정대는 8월 초 아무르강(어머니라는 뜻·흑룡강)을 건너 브레야 산악지대를 넘어야 하는 하바로프스크~치타 2200㎞ 구간에 도전하면서 내내 펑크의 불안에 시달렸다. 이 곳은 해발 900~1000m 아마자르와 아무락쿠라 따위 산맥을 통과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최악의 험로로 꼽혔다. 노면의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안 좋았다. 바닥 곳곳이 울퉁불퉁하고, 양의 창자만큼이나 꼬여 있는 굽이길이었다.

햇볕을 받아 기품 있게 빛나는 자작나무숲과 끝간 데 없이 펼쳐진 녹색 벌판은 바로 이 하늘 길 뒤에 숨어 있었다. 이런 장관을 만나기 위해 차량 12대의 타이어 60개 중 3개가 완전히 망가지고 14개가 펑크났다. 심지어 원정대를 이끌던 러시아 경찰의 선도차마저 세 차례 펑크나 대원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바이칼까지 가려면 바퀴를 지켜야 합니다. 칼돌과 요철을 조심하세요. 속도를 줄이고 앞차와 거리를 유지를 하세요.”
동쪽 원정대가 본격적으로 비포장도로 주행에 나선 1일. 10여 시간 험로를 달린 오후 7시께 6호차 오른쪽 앞바퀴가 펑크났다는 무전이 울렸다. 대원들은 이 때 완전히 망가져 형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타이어를 보고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순간에 긴장과 불안감이 감돌았다.

다음 날인 2일은 최악이었다.

위도 54도 부근으로 올라가 마그다가치~마고차 540.8㎞ 구간을 돌파하는 데 무려 17시간이 걸렸다. 타이어 교체로 시간을 지체한 대원들은 3일 새벽 4시에야 겨우 예정했던 마고차 활주로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비 내리는 활주로에 얼기설기 천막을 설치한 대원들은 피로와 추위에 지쳐 쓰러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불안·추위·어둠 등 악조건을 무릅쓴 원정대의 도전에 대자연은 이윽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열흘 동안 잔뜩 흐리던 날씨는 3일부터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맑아져 고대하던 푸른 하늘이 열렸다. 햇볕에 반짝이는 자작나무는 하얀 빛깔로 한껏 치장을 하고 차량을 향해 우아한 손을 흔들어댔다. 민들레와 쇠비름 따위를 키우는 대초원은 소나 말을 안듯이 품안에 차량 행렬을 맞아들이며 ‘웅혼한 기상을 품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시베리아 벌판에 어울리는 똔나강변의 황홀한 일출과 유리텐 언덕의 쌍무지개도 뜻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원정대에 참가한 고혜경 가톨릭대 교수는 “무지개는 저 너머 미지의 세상으로 연결해주는 다리를 상징한다”며 “시베리아의 석양 속에서 더없이 상쾌한 바람을 맞으니 창자까지 시원해진다”고 감탄했다.

브레야트공화국의 울란우데를 거쳐 바이칼에 접근한 동쪽 원정대는 9일 이르쿠츠크에 도착해 유라시아 포럼과 바이칼 천지굿에 동참한다. 치타/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국적 다르지만 하나의 마음 흘러” 벤야민 박 노보시비리스크 주의원 “얼굴은 같지만 국적은 다릅니다. 하지만 그 곳엔 하나의 마음이 흐르고 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5일 벤야민 박(44·사진) 노보시비리스크 주의원은 오비강 위 유람선에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앞으로 남북철도가 개통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되면 노보시비리스크와 한국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1961년 연해주 나홋카에서 태어난 박 의원은 타지키스탄을 거쳐 1990년 노보시비리스크로 이주해 왔다. 1981부터 1983년까지 전소련 가라데 선수권대회를 3연패 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고 9년 동안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그는 2001년 노보시비리스크 주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이번 대장정이 한국을 러시아에 알리고 양국의 우호를 이끌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한국 설악산에 갔다가 그 곳의 한 할머니가 ‘우리도 가난한데 왜 북한 주민들에게 돈을 주냐’고 말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박 의원은 “이곳에서는 내가 친남 세력으로 분류돼 전에 알고 지내던 북한 사람이 이제는 나를 피하기도 한다”며 “통일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겠지만 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러 경제교류 분야에서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단기적으로 투자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보시비리스크/글·사진 박영률 기자 “유라시아 도로로 서울까지 가고싶어” 세리게이 텐 트루드그룹 회장 러시아 건설회사인 트루드 그룹의 세리게이 텐(29·사진) 회장은 3일 치타에서 서북쪽으로 395㎞ 떨어진 도로공사 현장을 지나는 한-러 유라시아 동쪽 원정대를 초청해 성사를 기원하며 동포애를 표시했다. 그는 연방의회 두마의 유일한 고려인 출신 의원인 선친 유리 텐이 3년 전 숨지자 그룹의 경영을 이어받아 국제 사업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하바로프스크~치타 구간의 도로 공사 가운데 170㎞의 포장공사를 완공했고, 100㎞의 기반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는 “기후·지형·지질면에서 악조건이 많은 탓에 대부분 폭파와 성토가 필요한 난공사 구간이지만 2010년 이 도로가 완공되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1만1천㎞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도로가 될 것”이라며 “유라시아 통로를 건설함으로써 일본 도쿄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동양과 서양,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디딤돌을 놓겠다”고 말했다. 또 “도로를 완공하면 차를 타고 서울까지, 더 나아가 제주까지 가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트루드(노동이라는 뜻)는 1988년 유리 텐이 산업협동조합으로 창설해 건설·건축·식품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기업이다. 그는 모스크바 국립 법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땄으며 3년 전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과 결혼했다. 치타/글·사진 안관옥 기자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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