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친절한 도우미가 되겠습니다.

동포들과의 교류협력 및 지원협력사업에 대한

새소식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호미없어 조개로 농사 짓는 모습에 충격"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7-07-06 00:00:00조회507회


“러시아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을 보니 너무도 참담했어요.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봉사회를 조직했습니다.”
광주시 서구 쌍촌동 상무고 옆 골목 ‘고려인 문화농업교류협력회’. 지난 2000년 ‘고려인돕기 자원봉사회’로 지폈던 불씨가 올해 협력회로 발전했다.
오채선(吳彩善·70·전직중등교장) 회장은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손이 달린다”고 말했다. 현재 회원들은 200여명. 이중 20여명은 수개월 또는 1년씩 현지 봉사를 마쳤고, 현재 현지 봉사 중인 회원만 10명이다.
협력회가 돕고 있는 고려인들은 러시아 연해주 ‘재이주(再移住) 고려인 정착촌’ 사람들. 1937년 스탈린 통치하에서 중앙아시아 사막지대(우즈베키스탄)로 강제이주당했다가,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면서 그곳에서 배척당하자 또 다시 6000㎞나 떨어진 연해주로 어쩔 수 없이 되돌아온 이들에게 제공된 집단거주지다.
연해주 정착촌은 모두 6개였으나 현재는 4개. 연해주에 흩어져 있는 재이주 고려인은 2만~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군부대가 철수한 막사 등지에서 최하위 극빈층으로 내몰려 생존에 허덕이고 있다. 회칠한 벽과 마룻바닥에서 찬 바람을 집에서도 맞으며, 질병과 가난, 인생의 회한 속에 살고 있다.

2000년 3월 전남 장흥군 유치면 운월리에서 친환경농법을 고집스럽게 실천해온 ‘돌나라 한농복구회’가 유기농법을 보급하기 위해 연해주를 찾았다가 정착촌을 맞닥뜨렸다.

한농회원인 오채선 회장은 현장을 목격하고, 귀국하자마자 ‘봉사회’를 조직했다. 오 회장은 “호미조차 없어 조개껍데기로 흙을 긁어 채소를 가꾸는 것을 보고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현지 봉사자로 일하다 잠시 귀국한 김재영(金在永·35)씨. 오 회장의 권유로 “1년간 한글과 농사법을 가르치겠다”고 고심 끝에 결심, 아내 박정인(朴貞仁·33)씨와 함께 2001년 연해주로 들어갔었다. 크레모브 정착촌이었다. 귀국 후 “돌아와서 잘됐다”던 그는 그러나 고려인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 상의해 두 달 만에 다시 연해주로 향했다.

김씨 부부와 같은 현지 봉사자들은 국내 협력회와 긴밀하게 연락하며, 농토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재이주 고려인들은 ‘여행자 신분’으로 무국적. 따라서 정부로부터 직접 토지를 임차할 수 없었고, ‘1차 임차인’으로부터 빌리려면 최소 10배를 더 내야 하는 실정이었다. 150만평의 땅을 3000평당 1만원 조건에 임차해서 콩, 옥수수, 토마토, 수박 등을 짓게 하고, 재·숯가루를 이용한 유기농법을 가르쳐 주었다. 임차비는 회원후원금으로 충당했다.


현재 임차지에서 80여가구가 농사를 짓고 있다. 봉사자들은 농기구가 없는 이들에게 2003~2004년 트랙터 5대를 구입해 주었다. 소, 돼지, 병아리도 사주었다.
회원들의 단기봉사도 활발하다. 광주이연안과, 조선대 치대 등 광주 의료진들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연안과는 2002년, 2004년 의료진 10명을 파견했다. 안과전문의 임선택(林善澤·43)씨는 “1주일 동안 쉴 틈도 없이 돌아다니며 진료·치료를 하면서 ‘동포애’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의료기기와 약품, 안경뿐 아니라, 민족학교 화장실도 마련해 주었다. 이 학교 최마샤 학생은 “겨울에는 너무 춥고 무서웠고, 여름에는 천장에 비가 새서 우산을 받치며 사용했던 기억도 있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이 되었다”며 감사편지를 최근 보내오기도 했다.
현지 봉사는 못 하지만 후원회원들의 열의도 대단하다. 전남 나주시 중앙동에서 문구사를 하는 고창택(高昌鐸·53)·장정숙(張貞淑·49)씨 부부는 2000년부터 학용품과 옷가지를 20~50박스 가량 보내고 있다. 매년 300만~500만원어치에 달한다.
현지 봉사자들이 민족학교를 만들어 한글과 민요, 컴퓨터사용법 등을 가르치는 데 필요하기 때문. 장씨는 “2002년 정착촌에 가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조그만 뜻”이라고 했다.

김재영씨는 “고려인들이 현지에서 생산하는 콩 등 유기농품을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고려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