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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의 따님 최류드밀라 할머니가 잠들다

작성자최고관리자작성일2006-07-09 00:00:00조회507회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내신 최재형 선생의 따님 최류드밀라 할머니가 잠드셨습니다.

<최 류드밀라 할머니의 인생역정>
러시아 연해주 뽀씨에트 노보끼예브스크촌에서 1910년 5월 14일에 출생하였으며, 그 후 슬라비얀카로 이사하였다. 1919년에 니꼴스크 우수리스크로 이사하여 김나지아 학교를 다녔다. 그 곳에서 국민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5년에 집안이 그라데고보로 이사하자 전학하여 1929년 그라데고보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에 모스크바에 있는 농업학교인 찌미라제보 아카데미에 입학하였으나, 부친이 자본가라는 이유로 1931년 봄 끼르키즈공화국으로 유배되어 알라이꿀체 꼴호즈에서 짐승 키우는 기술자로 일하였다. 1933년 프룬제(현재의 수도 비쉬켁)로 가서 1935년 사범학교 화학과에 합격하여 1940년 졸업하였다. 1931년 겨울 끼르키즈에서 끼르키즈인과 결혼( 이 당시는 고려인이 한 명도 끼르기즈에 없었음)한 후 가락꼴로 보내져 그후 계속 가락골에서 선생님을 하시면서 사셨다. (박환교수님 자료에서)

정년퇴임이후에도 키르키즈스탄의 북쪽 지방인 가락골시에 사시던 할머니는
쉬꼴러(학교)에서 화학 계통을 가르치셨던 인연으로 평소 선생님을 존경하던 학교제자들 그리고  주위에 20여명도 안되는 몇명 지인들에게 둘러쌓인 쓸쓸함 속에 어제(10월26일) 가락골에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이계룡 선생님의 갑작스런 연락으로 알게되어 가보니 장례식 치를 비용도 없어서 쩔쩔매고 있었고 지난번 mbc의 고려인동포에게 희망을! 특집생방송에도 출연하신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는 동생 최 엘리자벳다(90세)는 연세도 드시고 국가가 달라져서 비용도 많이 들어 오시지도 못하고 아쉬움만 달랬다고 합니다. 현지 자원봉사자 이현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지역이 워낙 외진 곳이어서 자주 뵙지도 못했었는데 장례비라도 지원금을 전달해드리고 나니 거기 모인 많은 분들이 다들 고마워하시며, 천사가 와서 할머니의 가실 길을 예비해 주었다고 눈물로 인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최할머니는 1929년에 모스크바에 있는 농업학교인 찌미라제보 아카데미에 입학하였으나, 부친이 자본가였다는 이유로 1931년 봄 끼르키즈공화국으로 유배되어 1937년 강제이주 당해 오셨던 고려인동포들과는 달리 혼자 외롭게 사셔야했던 최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현지인과 결혼하여 살아오시다가 향년95세로 설움많던 이 생을 마감하신 것입니다.
평소 생애가 강직하시고 주위의 본이 되는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사시면서 이제 겨우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되었는데 돌아가시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많은 고려인동포들이 형제 자매나 친척들이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우크라이나 등에 흩어져 살아서 명절이나 애경사에도 같이 모이지도 못하고 외롭게 지내셔야만 한답니다.

오늘도 이방에서 외롭게 생을 보내고 계실 많은 고려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생각해 보면서 이분들 위한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이 함께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