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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장 허위 손녀 4일 방한

작성자 연합뉴스 2006년 10월 3일 작성일2007-01-28 00:00:00조회577회

항일의병장 허위 손녀 4일 방한
   우즈벡 허로자씨 조부모묘 성묘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구한말 일제에 항거해 서울진공작전을 펼쳤던 항일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장손녀 허로자(80)씨가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으로 4일 방한한다.

   이번 초청은 지난달 우즈베키스탄 순방중이던 한명숙 국무총리가 허 씨를 만나 초청을 약속했고, 이를 동포 전담기관인 재단이 독립유공자 초청계획의 일환으로 공식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왕산 허위(1854-1908년) 선생은 1907년 13도 연합창의군 1만여 명을 이끌고 일제통감부 공격을 위해 서울 진공작전을 벌이는 등 활발한 의병활동을 벌이다 일본군에 붙잡혀 1908년 9월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한 항일의병장이다.

   허 씨는 방한기간에 경북 구미의 선영을 찾아 할아버지의 묘소에 성묘한 뒤 친지들과의 상봉하며 한명숙 총리 예방을 비롯해 외교통상부,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할 예정이다.

   또 국사편찬위원회를 방문, 이주 정착 과정과 할아버지의 의병활동에 대한 내용도 구술할 계획이다.

   허 씨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펴다 옥고를 치른 왕산의 장남 허형(일명 허학.1887-1940년)의 둘째딸로 왕산 직계후손 중 최고령 생존자다.

   왕산 후손의 비참한 삶은 1907년 왕산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1호 사형수로 처형된 뒤 4명의 아들 가족 모두가 일본 경찰의 검문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시작됐다.

   1926년 연해주에서 태어난 허씨도 1937년 구 소련정부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부모와 함께 카자흐스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까지 흘러가 지금까지 미혼으로 외롭게 살아왔다.

   허 씨의 생존은 7년 전 고려인돕기운동본부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무료진료를 펼치던 이 단체 윤덕호 씨에게 발견돼 확인됐다.

   국내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막노동일을 하던 허위 선생의 손자인 허게오르기(62)씨와 허블라지슬라브(55) 형제도 고려인돕기운동본부의 도움으로 최근 '특별 귀화증'을 받아 국적을 회복했다.

   이광규 재단 이사장은 "역사에 공헌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모국을 방문하는데 경제적 여건 등 아직도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이라면서도 "허씨의 방한이 독립운동가 및 그 후손에 대한 정부의 책무를 보여주는 고무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ghwang@yna.co.kr        2006년 10월 3일